한국형 고속철도 비밀 해부

입력 2004-01-27 15:02:29

오는 4월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속철도 시대를 맞이한다.

20세기 자동차의 시대에서 소외됐다가 21세기를 맞아 고속화와 쾌적성을 바탕으로 다시 찬란한 부활을 꿈꾸는 기차의 '야망'을 우리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1964년 동경올림픽에 맞춰 개통된 신칸센(당시 시속 170km, 현재 시속 350km)과 이후에 등장한 프랑스의 떼제베(TGV), 독일의 이체(ICE) 등 고속전철의 이름은 바로 선진국의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올해부터 경부고속철도를 질주할 KTX(경부고속철도차량) 역시 떼제베를 만든 프랑스 알스톰사에서 도입된 수입품이다.

그러나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

고속철도 시대를 눈앞에 둔 지난해 말 우리기술로 만든 차세대 한국형 고속전철 시제차량이 시속 300km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최고속도는 KTX의 시속 300km 보다 50km 더 빠른 시속 350km다.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한 세계 5번째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으로 우뚝 세운 '한국형 고속전철'의 비밀을 벗겨본다.

◇불가능은 없다=경부고속철도 건설이 결정된 1990년대 초.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춰 국내 철도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당시 우리의 철도기술은 선진국의 26.4%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모한 욕심이란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96년 12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현대정공(현 로템), 현대중공업, LG산전 등 모두 129개 산.학.연 관련기관이 네트워크를 구성, 6년만인 2002년 4월 한국형 고속전철 시제차량을 완성했다.

박사연구원 112명을 포함해 한해 평균 937명의 연구원이 투입됐으며, 전체 예산은 2천100억원에 달했다

한국형 고속전철은 프랑스 떼제베(TGV)를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외국기술의 단순한 이전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단계 더 발전시킨 신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설계와 주요 핵심기술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국산화율은 무려 92%에 이르고 있다.

◇돌고래형 코의 비밀=한국형 고속전철 가장 앞부분(동력차)은 돌고래 형상의 유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고, 바퀴에는 커버가 씌워져 있다.

시속 200km 이상의 고속주행에 따른 공기저항과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해석프로그램을 활용해 설계된 부분이다.

동력차 운전실 내부는 운전자의 피로를 최소화 하기 위한 인간공학이 적용됐을 뿐만아니라 만약의 충돌사태에 대비해 운전실 앞부분에 벌집처럼 생긴 에너지 흡수구조를 설치했다.

이 벌집구조는 330t 짜리 고속전철이 시속 22km로 벽에 충돌할 때 발생하는 6MJ(메가줄)의 충격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다.

◇핵심장치도 모두 우리손으로=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장치로 열차 전체에 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은 '견인전동기'가 맡는다.

한국형 고속전철이 탑재하고 있는 1.1MW(메가와트)급 고출력 유도전동기는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우리가 세계 3번째로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고속전철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공급하는 '주변압기'는 KTX에 비해 용량은 20% 늘리면서 무게는 오히려 15% 줄였다.

특히 견인전동기에 공급되는 전압과 주파수를 제어해 열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주전력 변환장치'에는 세계 최초로 전력용 반도체소자(IGCT)를 적용함으로써 전기적 간섭을 유발하는 유해 전파를 기존 전철에 비해 49%나 감소시켰다.

고속전철 지붕에 달려 있는 '판도그라프'는 안정적 주행과 지속전인 전원공급 기능을 맡고 있는 또하나의 핵심부품으로서 열차의 최고속도를 결정하는데 이것 역시 국산화에 성공했다.

◇최첨단 컴퓨터와 네트워크=고속전철이 안전하게 운행되려면 선두 열차에 주컴퓨터가, 나머지 열차에는 부컴퓨터가 설치되어 운전자의 명령을 각 장치에 정확하게 전달해 동작해야 한다.

컴퓨터와 장치들을 연결하는 신경망에는 우리기술로 설계, 제작된 TCN(Train Commun ication Network)방식을 적용했다.

전자석을 이용해 마모와 소음이 없는 '와전류 제동시스템'과 귀기 멍해지는 이명현상을 줄이기 위한 '객실 자동압력조절시스템' 등도 국산기술로 개발됐다.

◇세계 속의 한국형 고속전철= 한국형 고속전철이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는 것은 설계와 해석, 제작, 시험평가 등 종합적인 시스템 기술을 확보한 때문이다.

기차의 성능을 평가하고 필요한 부분의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기술은 열차 개발에 핵심부분으로서 극소수 선진국만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 호주, 중국, 대만, 러시아 등 전세계적으로 고속철도를 건설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추세로 볼 때, 2007년 한국형 고속전철이 본격적으로 운행될 경우 국산 고속철도 차량과 신호시스템, 선로구축물 관련 기술을 수출할 날도 멀지 않았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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