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혐오성 보도 피해자는

입력 2004-01-10 11:06:17

2001년 9월11일. 납치된 여객기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세계의 모든 TV 채널들은 쉴 새 없이 충돌장면과 건물붕괴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1주일 후 ABC가 앞서고 CNN과 폭스TV가 그 장면의 재방송 횟수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반복된 영상이 시청자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한국의 TV화면들은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조류독감)에 감염된 닭.오리 살처분 현장으로 도배됐다.

살기 위해 연신 날개를 퍼덕거리는 닭과 오리들이 버둥거리는 모습, 포대에 담겨진 채 구멍뚫린 곳으로 머리만 내밀고 주위를 살피는 닭, 죽어 나뒹구는 닭과 오리들…. 잔혹하고 혐오감을 주는 영상들이 아무런 여과없이 주요 뉴스시간대를 점령했다.

이런 장면을 보고도 닭고기를 먹는 강심장들이 얼마나 될까? 치킨집 간판만 봐도 대부분 발길을 돌릴 것이다.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람에게 해가 없다며 닭고기 시식회를 갖지만 소비자들은 꿈쩍도 않는다.

특히 아이들의 불안감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하다.

아이들은 오리털 파카를 입기조차 두려워한다.

익혀먹으면 안전하다고 그렇게 강조하지만 튀김통닭을 먹고 나면 왠지 찜찜하다.

이 와중에 피해를 당하는 쪽은 축산농들이다.

직업의식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통제구역까지 무시하고 찍은 TV영상들이 한국 축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돼지 콜레라, 구제역, 광우병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농축산물 수입자유화에 대비해 축산업을 살리자고 아우성이다.

신문보도도 오십보 백보다.

무엇이 위기의 축산업을 살리는 길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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