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혁명 몰고온 일본의 센칸센(3)-지방도시산업특화로 위기탈출

입력 2004-01-08 09:02:23

위기의 대구 경제에 재도약의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할 것인가.

이제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경부고속철의 개통은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월등히 향상시키는 교통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로 인해 첨단산업 유치나 산업 발전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가능하지만 오히려 급속한 중앙종속 심화로 몰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같은 우려는 40년전 신칸센을 개통한 일본의 경험에서도 쉽게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한걸음 더 발전하는 도시들도 있는 반면, 일부 도시는 도쿄에 그 기능을 흡수당한 채 소도시로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이다.

신칸센 개통 후 일본 도시들의 흥망성쇠의 사례는 대구.경북이 경부고속철을 위기 극복과 기회로 바꿔낼 전략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로 효과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35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센다이는 과거에는 '미니 도쿄'라는 예명을 가진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80년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되고 4시간이 걸리던 이동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당겨지면서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보'가 도쿄로 집중되는데다 시간적 거리마저 가까워짐에 따라 센다이 경제 전체가 '도쿄권'으로 흡수돼 버린 것이다.

간사이대 아베 세이지 교수는 이를 일컬어 '스트로 효과'라고 이야기 했다.

빨대에 빨려들어가듯 센다이에 본사를 두고 있던 기업들이 모두 도쿄로 이전하고, 지사를 흡수.폐지하면서 센다이 경제 전체가 '도쿄권'으로 흡수돼 버린 것이다.

이 같은 스트로우 효과의 사례는 일본 서북부의 아키타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7년 모리오카에서 아키타까지 신칸센 노선이 연장되면서 아키다시 주민들이 신칸센을 이용, 인근 대도시의 쇼핑시설을 이용하는 바람에 대형상점들이 철수해 소매점포수는 16%, 연간소비 지출액은 20%가 감소했다.

일본 동남부 해안에 자리잡은 시코쿠 섬도 신칸센으로 인한 영향은 아니더라도 '스트로 효과'에 의해 피해를 입은 대표적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철도가 놓여 육지로의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시코쿠 주민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인근 오카야마시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신칸센, 기회의 제공

신칸센이 재앙이 아닌 축복의 기회로 작용한 도시도 있다.

사방이 2,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여 접근이 어려웠던 야마가타 시는 1992년 야마가타 신칸센의 개통으로 이동이 용이해지면서 관광객이 급증, 오히려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된 것이다.

산성천, 유황천, 염화물천, 유산염천 등 다양한 성분의 100여개가 넘는 온천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오 스키장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춘 야마가타 시에 있어 신칸센의 개통은 날개를 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아키타시도 스트로 효과에 의한 지역 경제의 위축을 늘어나는 관광수요를 통해 메워 나갈 수 있었다.

야마가타와 같이 빼어난 관광자원을 갖추었지만 교통이 불편해 관광객이 발걸음하기 어려웠던 아키타시의 경우에도 신칸센 통과로 인해 관광수입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교통평론가 다카가키 유지로씨는 "나고야의 경우 스트로 효과에 영향받지 않고 지역색과 지역 경제를 지켜나가는 대표적인 도시"로 손꼽았다.

나고야만의 상권을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인구 추세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미세한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기 때문.

다카가키씨는 "나고야의 경우 인근 도요타시에 위치한 도요타 자동차 본사의 후광도 많이 작용하지만 식기류, 도자기 등 지역 산업이 확고한 기반을 잡고 있어 나고야 도시권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본 동해안과 북서쪽으로 가는 관광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것도 나고야를 있게 한 하나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색 특화만이 살길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역색을 가지고 산업기반을 보유한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는 도시의 앞날에 있어 확연히 명암이 갈렸다.

도시 기능을 유지함은 물론 한걸음 더 도약한 도시가 있는 반면, 어떤 도시는 침체를 면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다카가키씨는 "개성과 특색이 없는 도시는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비슷한 조건과 상권을 갖춘 도시라면 좀더 규모가 큰 도시에 흡수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충고했다.

지역색을 강조한 이미지 마케팅만이 도시가 살아남을 전략이라는 말이다.

간사이대 아베 세이지 교수는 도시가 살아남을 생존 조건으로 △지역 산업 특화 △인근 지역과의 네트워크 △도시만의 이미지 창출 △정부와의 협상력을 꼽았다.

산업기반을 조성해 생산력에서 타 도시보다 우위를 차지하던가, 지역내 관광자원을 인근 도시와 연계해 관광지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도시를 찾을 만한 유인책을 만들어 낸다던가, 정부주도의 투자 사업을 유치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베 세이지 교수는 "대구의 경우 과거 섬유 산업에 많이 의존했지만 현재로서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이라며 "이를 대체할 만한 도시 상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구시의 역량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인근 경산의 대학가와 산업을 연계한 교육도시로의 이미지 전략이라던가 인근 유교 문화지역을 연계한 관광자원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마케팅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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