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맹목적일 정도로 속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이 시대에 인생은 어떤 속도로 지나가고 있을까. 아마도 백마가 아닌 총알이나 로켓이 날아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우리들 인생은 엄청난 속도로, 더불어 허망하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종착역엔 무엇이 기다리나.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간 인생의 종착역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전에 강원 인제군 가리산 중턱에서 살고 있는 '거북이네' 얘기를 들어보자. 서울 토박이인 곽상주(39)씨는 7년전 도시생활을 접고 부인과 여덟살 딸, 다섯살 아들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나무와 짚으로 만든 집에 사는 곽씨는 요즘 겨울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장작을 패는데 구슬땀을 흘린다. 여름에 채취한 산나물을 부인과 함께 말리고, 300포기나 되는 김장을 담그고 냄비종을 두드려 동네 개들을 불러모아 밥을 준다. 아이들은 찬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자전거로 내닫는 등 가족 모두가 산골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고 있다.
"눈덮인 겨울산을 오래오래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곽씨는 아이들이 별을 보고 감탄할 줄 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는 감성을 지녔다고 자랑했다. 아이들이 놀러가자고 하면 도시처럼 스케줄을 짤 필요없이 훌쩍 떠날 수 있어 좋다는 부인 이향란(35)씨는 "내가 뭔가를 생각하며 살 수 있다"고 털어놨다. 딸의 태몽에 거북이가 나와 거북이네로 불리는 곽씨 가족들은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느끼고 생각할 여유를
거북이네처럼 슬로 에이징(Slow Aging.천천히 늙어가기)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목적이나 의미도 모른채 인생을 허겁지겁 사는 것에서 벗어나 인생을 제대로 음미(吟味)하며 사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은 똑같은데 천천히 늙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다. 슬로 에이징의 핵심은 바로 마음에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투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온 것이며, 또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했다.
슬로 에이징은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 떠밀려 인생을 살지말고, 나 자신을 찾아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슬로 에이징은 여러 형태로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었다. 미국에서는 삶의 여유와 마음의 안정에 가치를 두는 슬로비족(Slobbie: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혼자 보내기, 휴가 때 집에만 있기와 같은 '멈춤'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의 시계를 찾아서
10여년 전부터 국선도에 심취했다는 대구시의회 박성환(51) 의정담당관. "국선도를 하면서 우주의 이치를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국선도, 단학선원, 요가 등으로 대표되는 '명상'과 같은 정적인 활동이 큰 인기를 누리는 것도 슬로 에이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질병치료 등을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경쟁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으려 명상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말농장에서 땀흘리기, 산사에서의 참선, 산책이나 걷기 등도 천천히 늙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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