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이 터졌다.
지난 28일 오후 2시. 평일 낮 시간임에도 대구의 상영관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 봄 비수기를 감안하면 '살인의 추억'의 흥행은 '미친 듯'했다.
지난 25일 개봉후 주말 이틀 동안 서울에서 12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4월 들어 개봉한 영화 중 최고의 오프닝 성적. 금요일까지 합해 전국 누계는 45만명. 입소문이 퍼져 중간고사가 끝나면 더욱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면 '친구','공동경비구역 JSA'도 따라잡겠다"는 예견마저 나오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80년대 대표적인 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형사물. 과연 어떤 점이 관객을 사로잡았을까.
▨'미친듯'한 연기
송강호, 김상경, 전미선, 송재호, 김뢰하, 박노식….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모든 연기자의 연기는 120%. 특히 송강호의 연기는 신들린 듯하다.
욕을 섞어 건들거리는 폼이 영락없는 80년대 시골 형사 모습. 분위기에 따라 번득이는 눈빛도 일품이다.
김상경 뿐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형사반장 역의 송재호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등장인물들을 낡은 앨범 속의 낯선 인물처럼 배치한 감독의 의도도 일품. 세 명의 피의자를 비롯해 주인공들 주변의 조연들도 모두 연극판에서 지명도가 높은 배우들이다.
▨리얼리티를 '가장'(?)한 코믹
풀었다 조았다 이완이 흡사 관객을 '과메기'처럼 만드는 영화다.
특히 억지 없는 코믹스런 상황 묘사는 영화의 포인트. 사건 현장에 투입되는 사람들이 두번이나 도랑에 엎어지자 "도랑에 꿀 발라놨어!"라는 송강호의 대사, 피의자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군화에 덧 신는 토씨, 말끝마다 내 뱉는 욕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웃음들은 곧 이어지는 장면들에 의해 처절함으로 변해간다.
▨계산된 연출, 두 배 메시지
첫 도입부의 물결치는 황금색 논은 풍요롭고 한가로운 전원풍경.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타이틀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 현장이 잔인한 살륙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 뺨치게 처연하다.
현장 검증에서 백치인 피의자를 빼돌리는 장면도 8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우화적이다.
시원한 논을 가로 막는 육중한 공장, 심문하는 형사의 등뒤에 자리한 커다란 보일러 등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한국 사회의 현대사를 관통시키는 치밀한 연출이 일품이다.
▨향수어린 80년대 코드
유재하의 '쓸쓸한 편지'가 범행의 한 동기로 나온다.
애잔한 가사의 80년대 대표적인 포크송. 유재하는 198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팬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80년대 추억의 가수. 송강호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윤승희의 '제비처럼'도 한때 인기를 끈 히트곡이다.
술집 TV에 흘러 나오는 부천 성고문사건 보도, 등화관제 훈련 등도 모두 화성 연쇄살인사건처럼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있다.
▨뻔한 사건 결말, 그러나 의외의 엔딩
3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3천 여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단 1명의 범인을 잡는데 실패했다.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 형사 스릴러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훌륭한 결말을 낸다.
2003년 현재를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은 80년대를 성찰하는 듯 빼어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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