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산수유마을

입력 2003-03-19 09:39:29

여기저기에서 봄소식이 들려오지만 둔한 사람이 대구 도심에서 봄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가끔씩 올려다보는 먼 산 꼭대기에는 아직까지 눈이 쌓여 있고, 가로수 외양도 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멋내기 좋아하는 아가씨들의 옷차림이 겨울보다 가벼워 보이고, 바람 없는 날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정도다.

우리나라의 봄은 짧다.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왔다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긴소매가 부담스러워져서야 "벌써 봄이 끝나버렸나"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많다.

여유가 있다면 매화 다음의 '봄 전령사'로 일컬어지는, 샛노란 산수유꽃이 마을 어귀에서 시작해 산 중턱을 향해 달음박질치고 있는 지리산 자락으로 봄을 찾아 나서보자.

한약재로 쓰이는 산수유는 경기도 이천과 경북 영천, 의성 등지서도 생산된다.

하지만 최대 산지는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이다.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원IC에서 빠져 바로 좌회전한 뒤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 경계지점에 있는 길이 500m의 밤재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이 끝나는 곳부터가 산동면. 뭍에서는 봄을 가장 빨리 느낄 수 있다는 섬진강이 가까워서인가. 대구 주변과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지표면에서 제법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

차 안에서 보이는 보리 이삭 키가 최소한 10㎝ 이상은 돼 보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 봤다.

높이 6~7m, 둘레 2m 정도인 이 나무는 중국 산동성에서 들여온 것으로 1천여년 전에 심겨졌다는데 아직까지 꽃을 피우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큰 가지들은 '소생 수술'을 받은 후 쇠받침대에 의지한 채 누워 있긴 했지만.

해마다 3월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노란 꽂을 피우는 산수유 나무는 위안리와 대평리, 계천리 등 산동면내 곳곳에 있다.

그래도 제일 많은 곳이 '산수유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위안리 상위마을이다.

노래방과 단란주점이 즐비한, 대도시 유흥가 못지 않은 지리산온천 집단시설지구를 지나면 봄의 향연을 펼치는 산수유 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위안리 다음으로 산수유 나무가 많은 대평리다.

수령이 수십년에서 100년에 달하는 산수유 나무는 집 안에도 서 있고, 골목길에도, 밭에도 심겨져 있다.

마을 전체가 산수유 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

마을 앞 개울가에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수유 나무는 들판을 건너뛰어 산 중턱까지 퍼져 있다.

산수유 나무 그 자체는 볼품이 없다.

가지가 불규칙적으로 뻗어 있는데다 구부정한 게 높지도 않다.

이파리도 없이 피는, 손톱 크기만한 꽃 하나만으로는 꽃이라고 할 수도 없고 향기도 없다.

그러나 수백, 수천 송이가 한꺼번에 노란빛을 품어낼 때는 사람을 꿈 속 세계로 끌고 간다.

꽃이 지고 열리는 열매는 주민들의 짭짤한 소득원이기도 하다.

산쪽으로 2~3㎞ 더 올라가 작은 교량을 지나면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지리산 만복대(해발 1,433m) 자락의 위안리 상위마을이다.

평지에 가까운 대평리보다는 고지대여서인지 개화가 좀 늦은 편이다.

이 동네 구재찬(67)씨는 "올해 우리 동네 산수유꽃은 오는 주말부터 이달 말 사이에 만개해 한 달 정도 자태를 뽐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곳의 또 하나 특징은 산수유 나무와 함께 제주도처럼 돌이 많다는 것. 집은 숙박객들을 받기 위해 개량을 했지만 담은 대부분 돌담이고, 밭둑도 돌로 되어 있다.

돌은 오랜 세월을 말해 주듯 하나같이 푸른 이끼옷을 입고 있다.

교량 오른쪽 계곡으로 오르면 작은 사방댐이 있다.

댐 위쪽 수심이 어른 키의 2배는 족히 되지만 지난 가을 떨어져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꽃은 예쁘고 돌은 정겹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경쾌하다.

하지만 다 좋을 수만은 없는 법. 마을 입구의 짓다가 만 2층 콘크리트 건물이 흉물스럽다.

고로쇠물과 토종꿀, 말린 산수유 등을 집 앞에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상혼도 느껴진다.

한편 지리산온천 집단시설지구에서는 21일부터 3일간 중국기예단 공연, 팔도품바경연대회, 산수유술 무료시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제5회 산수유꽃 축제가 열린다.

◇인근 가볼 만한 곳

△노고단-해발 1,507m로 지리산 일주도로를 이용해 차로 오를 수 있다.

지리산 등산코스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천은사-신라 흥덕왕 3년(828년) 덕운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물맛이 달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감로천이라는 샘이 있어 처음엔 감로사(甘露寺)라 불렸으나 샘을 보호하는 구렁이가 죽고 나서부터 샘물이 황토색으로 변하더니 결국엔 물줄기가 끊기면서 천은사(泉隱寺)가 되었다고 한다.

광의면 방광리 지리산 일주도로 입구에 있다.

△화엄사-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저사가 창건한 절로 마사면 황전리에 있다.

지리산 8대 사찰 중 제일 큰 사찰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인 각황전을 비롯 국보 4점과 보물 5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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