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같다면 세상은 참 재미 없을지도 모른다.
유리관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면 호기심도 없을터. 치부를 가릴 것은 가리고 때로는 하얀 눈처럼 더러운 세상을 덮어 줄때도 있어야 하는데 미주알 고주알 다 까발린다면 이 세상은 진짜 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록 속은 안 보이더라도 겉만 보면 속을 넘겨 짚을 수 있는게 동물들이다.
배가 고프면 얼굴에 배고픔이 배고 슬플때나 기쁠때도 그 표정만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도 원래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겉만 보면 속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은 곧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그러나 삶이 복잡, 다양해지고 너를 누르지 않으면 내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치열한 경쟁사회로 치닫자 인간에게는 겉다르고 속다른 속성이 배기 시작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양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후한 광무기(光武記)에 나오는 고사다.
지금 우리사회는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같은 표리부동이 판을 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겉은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고 속은 썩은 내용 투성이다.
과일상자에서부터 백화점이나 아파트 등 대형 건물, 다리나 터널, 지하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이같은 표리부동현상은 비일비재하다.
재미는 비록 적더라도 투명하게 겉과 속이 똑 같은 시대가 그리운 때다.
거짓말과 거짓행동은 어쩌면 인간의 생리현상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에도 최소한의 도리를 갖추는게 도리다.
'거짓'에 무슨 도리가 있느냐고. 거짓말이나 거짓 짓거리를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거나 적게 주는게 도리다.
남을 죽이고 철저하게 낭패시키는 '거짓'은 가장 악질이다.
이번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를 바로 곁에서 겪으면서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나라의 불행한 도시 거짓더미 속에서 살고 있구나하는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불이 나도 끄떡없고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지하철 전동차는 '불쏘시개'였다.
휘발유 한통의 불에 수십칸의 객차가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타버려 200명에 가까운 서민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런데 같은 전동차라도 수출용은 불이 나도 끄떡없는 내장재로 만들어 팔았다지 않은가. 한국 로템이 최근 홍콩에 전동차를 수출하면서 국내용 강화 플라스틱(FRP)과 다른 페놀계 수지를 써 전동차를 만들어 납품했다 한다.
페놀계 수지는 플라스틱류보다 불연성과 난연성이 탁월하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홍콩 등은 모두 이 내장재를 쓴다.
국내용 전동차의 벽, 의자, 천장 등의 내장재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강화 플라스틱은 가공하기 쉽고 값이 싸 건축자재, 생활용품 등으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불에 약하고 연소때 독가스를 내뿜어 극장, 호텔 지하철 등 다중시설에는 사용 않는 것이 통례다.
수출 전동차는 내부 설계도 위험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통로도 넓고 연결부분도 불연자재로 사용한다.
좌석도 불이 붙지 않는 스테인리스란다.
물론 안전기준이 달라 수입국에서 이를 쓰도록 요구했기 때문이지만 왜 우리는 그들보다 싸고 불이 잘 붙고 독연기를 내뿜는 플라스틱을 사용해 백수십명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누구하나 수출용과 내수용이 이렇게 차이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것도 돈타령만 할 것인가.
어디 전동차 뿐이랴. 수출용 승용차도 마찬가지. 차 업계는 절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수출용은 내수용보다 튼튼하고 보증기간도 길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산업 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승용차의 내수시장에서의 보증수리기간은 차체 및 일반부품 경우 2년간 4만㎞인데 비해 동일사양의 수출용경우 현대는 5년간 9만6천558㎞, 대우와 기아는 3년에 5만7천934㎞다.
물론 시장 점유율을 높여 많이 팔아먹기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국민의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풍토는 이제 종식돼야 한다.
자칭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사는 선진국이라면서 하는 짓거리 들은 새까만 후진국 행태다.
우리 국민도 이제는 겉과 속이 같고 수출용과 내수용이 같은 선진국다운 서비스와 안전속에서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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