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구조적 학살

입력 2003-02-26 09:45:18

과거의 학살이 주로 행위론적 접근을 필요로 했다면 현대에서는 구조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행위적 학살이란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 나치주의자들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 대표적인 예이다.

구조적 학살이란 간접적이고 가해자나 피해자가 불명확 할 때가 많고 당장 가시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지구촌 사상 초유의 인종학살을 가져온 아프리카 르완다 사태는 소수 인종간의 갈등에서 발생한 피차간의 인종 청소로 비쳐 지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통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 종족을 다른 부족을 대리 통치하게 하는 일종의 '마름' 역할을 시켜왔고 이로 인해 쌓인 감정의 골이 제국주의자들이 물러 간 뒤 폭발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 행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분노하면서 보이지 않고 간접적인 것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관심 하고 때로는 관대하다.

그것은 마치 눈앞에 1명의 적군을 사살한 병사는 평생의 죄책감을 가질 수 있으나 까막득한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수십만의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 조종사는 훨씬 죄책감을 덜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대구 지하철 참사현장에는 없었지만, 근처에 있었던 이들과 매스컴을 통하여 많은 것을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다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저지른 정신병자, 마스터키를 뽑고 나온 기관사, 안이한 통제실…. 그러나 정작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사고 후 가졌다는 기관사와 사령실의 사전 조율, 사고에 아랑곳없이 스포츠 중계를 하는 방송, 불연성 소재 사용이 법제화 돼 있지 않는 지하철, 기관사와 방화범 그리고 통제실로 희생양을 찾으려는 관계 당국과 매스컴, 대구지하철 참사 후에 발생한 모방 범죄, 참사현장 보도를 TV로 보며 영화 '다이하드'에 비교하는 학생들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직접적인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성장위주의 경제 정책, 퇴출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IMF정책, 임기 내에만 안전하면 된다는 관료들의 보신주의, 무엇보다도 만연된 생명경시의 태도와 안전 불감증아래 지금도 구조적 학살은 자행되고 있다.

박철웅 가야대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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