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의 눈-의대지원 열풍 속에서

입력 2003-02-25 13:11:31

의사다운 의사가 없다고요? 의사들은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와 야단들인데, 의대 지원 창구는 또 들어가지 못해서 법석들이냐고 말입니다.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하기조차 하다는 당신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물론 그 걱정 뒷면에 숨겨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당신의 애정어린 힐난의 의미도 가지런히 되새겨 보았습니다.

언뜻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들이 실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은 아닐까요? 건강보험 재정이 거덜났는데 의사들만 안정적으로 배부를 수 있냐는 삿대질이나 이 험한 세상에서 내 자식만큼은 배부른 안정을 위하여 의대로 등을 떠미는 것이나 그리 다르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요.

어느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잣대나 가까운 미래를 점쳐보려면, 대입 수험생의 학부모들을 챙겨보라고 하더군요. 몇 해를 늦추어서라도, 아니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는 학교를 중도에 파하고서라도 의과대학으로 보내려는 눈물겨운 열풍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의과대학으로 밀려오니 선배될 처지에서 덩달아 기분이 우쭐하지 않느냐고 하셨나요? '성적이 우수한' 후배들이 온다는 데야 마다할 선배가 없겠지만, 단지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에' 밀려오는 후배들의 모습에는 솔직히 우울해집니다.

남다른 성적을 올리기까지 쏟은 투자에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중하차하느라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하며,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한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비용 등을 따져보더라도 말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투자에 대해서 만으로도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인 배당을 거둬들일 수가 있을까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는 의사들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단순한 대차대조표에 포함되지 않았던 숱한 항목들 - 예를 들어 남달리 우수한 성적에 걸맞은 대우, 바로 그 우수함 때문에 별로 원하지도 않았던 의대로 지원하였던 것에 대한 가중치, 또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함께 하지 못하여 몸이 더 고달팠던 수업과 수련의 시간에 대한 보상건까지 생각하면 그만 아득해질 따름입니다.

사실 이번 의료대란의 와중에 구겨진 자존심과 빼앗긴 청춘을 생각하면 억울해서라도 참을 수 없다는 볼멘 소리가 의사들 사이에서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의사다운 의사를 원하십니까? 의사가 될만한 재목들을 보내 주십시오. 최소한 자기가 좋아서, 혹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조금 밑져도 그리 억울하지 않고, 또 조금 억울해도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모든 가치가 하나같이 그에 상당하는 황금덩어리로 가늠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요? 차라리 의대 시험 과목에 의사가 될성부른 인성에 대한 자격을 심사하면 되지 않겠냐고요? 설마하니 '인성 북돋워주기'보다는 '인성 시험에서 고득점 따기'를 위한 또 하나의 족집게 과외 학원이 들어서는 우리네 풍속도를 모른다 하시지는 않겠지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알 수 없는 것이 한 길 사람의 욕심이요, 강산이 바뀌는 데는 10년이면 되지만 사람 하나 바뀌려면 얼마큼 세월이 흘러야 되는지 한숨도 나오겠지요. 아무리 막막하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부터라도 변해야지요. 의대지원 열풍의 불씨는 훗날 또다른 폭풍으로 터져 나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송광익(송광익소아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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