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슴의 눈을 마주보기는 처음이다.
사슴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보게 되더라도 '관(冠)이 향기로운'이라 했던 뿔이나, 긴 목에 시선이 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사슴의 눈빛을 본 것이다.
잠시 마주하는 동안 뭐라 말할 수 없는 정감이 밀려온다.
저 눈빛, 오랫동안 저것을 잃어버리고 있었구나. 잃어버린 어떤 것과의 다시 만남에 몸이 떨린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사슴 농장에 초대를 받았다.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서 세상은 온통 새하얀 신천지가 되었다.
농장을 향해 아주 느린 걸음을 떼었다.
때마침 눈이 두텁게 덮여서 '알프스 농장'이란 푯말이 조금도 어색하지가 않다.
산바람이 여간 시린 것이 아니어서 설경을 즐길 여유를 갖기가 힘들었지만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다.
모자를 눌러쓰고 발목까지 감싸주는 방한화를 빌려 신고서야 주위를 둘러보겠다고 나섰다.
잃어버린 것과의 만남
사슴들은 겨울 산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듯 유유히 노닐고 있다.
낯선 이들이 반갑지 않은 모양인지 키 큰 엘카 한 마리가 철책 가까이 오더니 떠받는 시늉을 한다.
우리를 둘러보고 나오다가 어린 사슴을 만났다.
순간 사슴의 물기 어린 두 눈망울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사슴은 폭신한 담요를 두르고 얼굴만 내민 채 얌전하게 앉아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일어서지도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사슴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눈이 젖어온다.
웬일일까. 애련함 때문인가. 애처로운 모습이긴 하지만 애련함과는 뭔가 다른 더 근원적인 어떤 것인 성싶다.
순수했던 시절 그리워
방금 내가 만난 것은 무엇일까. 속으로 되뇌이며 우리 앞으로 난 좁은 길을 걸어나온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걷는다.
길 양옆에 소나무 잣나무가 눈을 얹은 가지를 무겁게 드리우고 있다.
이제는 검불이 되어버린 칡넝쿨도 널브러진 채 눈 이불을 덮고 있다.
긴 의자에 쌓인 눈을 털어 내고 잠시 앉아본다.
하늘은 아직도 무거운 표정이다.
홀로 앉아서 가슴이 막힐 것 같은 정감의 실체를 생각해 본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쓸쓸함인 것도 같다.
어린 사슴의 눈은 어린아이의 눈과 꼭 닮았다.
그것은 바로 티 없는 순수함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순진무구함이다.
어린 사슴의 눈을 마주보면서 그립고 그립던 대상을 만난 것 같던 이유와 쓸쓸해지던 까닭을 알 것 같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나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아마도 순진함, 무구함이리라. 언제였을까. 언제 나는 그것을 놓쳐버렸을까. 모태에서 분리되면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던 젖먹이 적에? 나비가 붙여진 하얀 고무신을 신었던 학동시절에? 그보다는 훨씬 나중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나도 맑디맑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
아무튼 나는 무의식중에 잃어버렸거나 스스로 내동댕이쳐버렸던 소중한 것을 오늘 사슴의 눈빛에서 되찾았다.
그 눈빛은 세월의 이끼가 더께로 앉은 나의 심상을 한꺼번에 순백의 깨끗함으로 바꾸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찰나였다.
나는 여전히 하릴없는 어른일 뿐이다.
그립다.
이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순진무구했던 시절이 한없이 그립다.
다시는 내 것이 될 것 같지 않기에 순수함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어찌하랴. 어린 사슴의 눈빛에 눈시울 젖던 그 순간이나마 감사할밖에.
허창옥(약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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