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일 바빠 전화 못받았는데..." 통곡

입력 2003-02-20 13:24:02

◇대구시민회관

○...19일 대구시민회관에 마련된 지하철 방화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 참사 유족회와 김해 항공기 사고 희생자 가족 대책 위원회에서 보낸 조화가 도착해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 했다. 분향소에는 각계각층에서 보낸 60여개의 조화가 도착했다.

○...분향소와 실종자 가족 대기실 등이 함께 있는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뤄 일부 실종자 가족들이 너무 비좁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가족은 "체육관 등 좀 더 큰 장소도 있는데 왜 이렇게 비좁은 곳에 마련했느냐"며 "교통이 복잡해 접근도 쉽잖은 곳 아니냐"고 했다.

○...시민회관 주변은 상습 정체구역인데다 유가족, 실종자 가족, 취재진까지 몰리면서 온종일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던 한 운전자는 "편도 3차로가 사실상의 1차로로 변했다"며 "경찰이 교통을 통제해 줘야 유가족 등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교육청은 이번 참사로 대구지역의 유치원 및 초중고생 중 올해 중학교 입학 예정이던 곽재영(13·불로동)군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됐으며 10명이 다쳤다고 집계됐다.

◇유가족, 실종자 가족

○...실종자 가족 대표들은 19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날 오후부터 대구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구시측 협상 대표들과 협의를 갖고 몇가지 요구를 관철시켰다. 대표들은 대구시가 약속만 해놓은 뒤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 해결책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아내 임경숙(37)씨가 실종돼 시민회관 실종자 가족대기실에서 대기 중인 고완섭(43·대구 신암동)씨는 "시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내가 다니던 치과에 가 원장의 치료 확인서를 떼어왔다"고 했다. 아내는 시내 미용학원에 간다며 지하철을 탄 뒤 소식이 끊겼으며, 결혼 15년 동안 한번도 집을 비운 적 없는 아내와 이틀 동안이나 연락이 끊기자 중1 및 초교 5년생인 두 아들이 엄마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김홍(54·경산시 하양)씨도 실종된 아내 박귀남(52)씨를 애타게 찾았다. 특히 김씨는 사건 당일 오전 9시58분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회사 업무때문에 받지 못해 한스럽다고 했다. 아내는 친구를 만나러 시내로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것.

◇당국도 힘들어

○...사고수습대책본부에서 가장 힘겨워 하는 사람들은 실종자 신고 접수 창구 직원들. 무려 350여명의 실종자가 접수된데다 신고 신청자 10명 중 2, 3명 꼴로 고성을 질러대는 바람에 잔뜩 주눅든 모습. 한 직원은 "이들을 달랠 수밖에 없지만 힘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지하철공사 모 고위간부의 외아들 결혼식이 마침 오는 22일 토요일로 예정돼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엄청난 대참사의 와중이지만 식을 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 그때문에 이 간부가 참석이나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주위에서는 걱정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 본부는 19일 이번 화재참사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안전은 뒷전인 채 개발 위주의 관료적 행태를 보여온 대구지하철공사와 대구시 탓"이라고 주장했다. 민노총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도 당국은 한 정신이상자의 소행 혹은 지하철 기관사의 과실이 전부인양 개인에게 문제를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공서들 긴급 대응

○...대구시와 각 구군청은 지하철 사건과 관련해 이번 달 토요 휴무를 폐지하고 해당일인 22일에도 정상 근무키로 했다.

○...대구 동구의회는 21일까지 열 예정인 임시회 일정 중 업무보고 등은 다음 회기로 연기했다. 대신 19일 오전 긴급간담회를 갖고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비는 묵념을 올렸다.

○...K2비행장의 미 공군 소방서가 이번 사고 당일 대구 중앙로 일대에 장비와 인력을 투입, 진화 및 구조작업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K2 비행장 소방서는 대구소방본부와 2001년 8월 상호원조 협정을 맺었으며, 이번 출동이 첫 지원 활동이다.

○...대구시에는 각국으로부터 애도 서신·조문이 잇따랐다. 일본 히로시마 시장, 중국 닝보·선양 시장, 미국 애틀랜타시 국제담당 국장, 주한독일대사관, 부산주배 중국총영사관 총영사, 주한 파키스탄대사관 상무관 등이 서신을 보내왔다. 멕케일 한미연합사령부 준장은 19일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직접 방문했다.

◇봉사 이어져

○...대구시민회관 주변에서는 19일에도 대구 농협봉사단, 대구은행, 동아백화점, 대구백화점 등의 자원봉사자 300여명이 컵라면·음료수·커피 등을 대접하며 유족들을 격려했다. 적십자사, 구세군 자선냄비, 불교사회복지회 등을 통해 전국에서 답지하는 온정도 피해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했다.

○...대구 중구의 각종 단체들이 위문에 나서고 있다. 평통협의회, 민족통일협의회, 새마을지회 등은 귤·떡을 준비해 경북대병원·적십자병원 영안실 유가족을 위문했다. 중구자원봉사센터, 중구생활체육협의회 자원봉사단, 새마을부녀회도 봉사활동을 벌였다.

◇취재경쟁 치열

○...19일 오전 9시30분쯤 중부경찰서 수사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취재전쟁을 방불케 했다. 먼저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신경전을 벌인 기자들은 브리핑을 끝낸 조두원 대구경찰청 수사과장 주변에 한꺼번에 몰려 들었으며 몇몇 기자들은 탁자 위에까지 올라가 조 과장의 말을 체크하려 애썼다.

○...이번 수사는 지나친 보안 속에 진행돼 일부 기자들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기자들은 수사본부 관계자들을 따라 다니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반면 수사 관계자는 도망쳐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대구지하철공사 김건회 승무담당 과장은 몰려드는 기자들 때문에 못살겠다며 아예 취재에 응하기를 거부했다. 김 과장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대책본부를 통해 어떤 취지로 무슨 내용을 기사화할 것인지를 밝히고 허락을 받아 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사의 구진본 홍보팀장은 "김 과장이 사고 후 정신이 없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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