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아이 러브 유

입력 2003-02-18 13:42:35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19 그리고 80'(원작 '해롤드와 모드', 콜린 히긴스 작)은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무대다.

주인공 모드는 80의 나이에도 소녀처럼 맑은 감성을 지닌 유쾌한 할머니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가 안타까워 산에다 옮겨 심어주고 동물원의 바다표범을 몰래 바다로 보내주기도 하는 그녀는 언제나 삶을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면 19세의 해롤드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한 청년. 그러나 이 문제성 많은 청년은 모드를 만나면서부터 점차 변화돼 간다.

나이도, 기질도 너무나 언밸런스한 이 커플이 엮어내는 낯선 러브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은 오히려 그 사랑의 진실된 의미, 그리고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가슴이 싸아해진다.

지난 며칠간 신문과 방송은 개그 우먼 이경실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아내구타로 수갑이 채인 그 남편의 말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여하튼, 사랑합니다".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아내를 난타한 남편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사랑'이란 단어가 매우 적극적으로, 공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구인들이 말끝마다 '아이 러브 유'를 연발하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친구간에 '사랑해'라는 말을 썩 세련되게 사용한다.

'사랑'이란 단어를 접두어나 접미어에 붙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구사랑 동화사랑 하늘사랑 아이사랑 수학사랑 난사랑 록맨사랑 시사랑.... 게다가 '~를 사랑하는 모임'은 왜 또 그리 많아지는지. 사랑이 홍수를 이루는 세태다.

그런데도 정작 사랑이 필요할 때면 사람들의 얼굴은, 가슴은 냉랭하다.

수년전 중국의 베이징에서 머물렀을 때가 생각난다.

대여섯동 규모의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1년간 단 한 번도 이웃집의 부부가 싸우거나 때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자 잊었던 그 비명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랑의 이름을 내건 폭력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갖가지 현란한 포장 뒤에 숨어 은밀한 독소를 내뿜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영혼을 움직이는 사랑을 꿈꾼다.

연극 속의 모드와 해롤드처럼.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로버트 프로스트 시 '자작나무'중)라면서.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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