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화력으로 기세 등등하게 87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은 맥없이 해태에게 무너지고 만다.
1차전에서 김시진이 선발로 나선 삼성은 차동철과 한대화가 투·타에서 활약한 해태에 3대5로 지더니 2차전에선 포수 이만수가 악송구를 저지르는 초반 실책이 빌미가 돼 1대2로 졌다.
삼성은 3차전과 4차전도 2대4, 2대9로 잇따라 져 4전 전패로 우승을 헌납해야만 했다.
막강했던 타선은 터지지 않았고 약한 투수력도 문제였지만 큰 승부에 강하지 못한 종래의 모습이 되풀이됐다.
이듬해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와 만나 3전 전패를 기록, 충격을 안겨주었다.
박영길 감독이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퇴임하고 정동진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했다.
팀의 간판스타였던 장효조와 김시진을 비롯, 오대석과 허규옥, 투수 전용권과 장태수가 롯데로 트레이드되고 롯데의 간판 최동원과 김용철, 김성현과 이문한, 오명록이 트레이드돼 왔다.
당시 야구계를 뒤흔드는 대형 빅딜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인 1989년에도 삼성은 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태평양 돌핀스에 1승2패로 무너지며 쇠락하는 기미를 보였다.
정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뒤 90년 시즌을 맞았으나 역시 시즌 4위로 간신히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서 3위 빙그레에 2연승, 플레이오프서 해태에 3연승을 거두고 LG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나게 됐다.
하지만 LG에 무기력하게 4연패를 당하며 다시 한 번 우승의 꿈을 날려야 했다.
정 감독은 옷을 벗었다.
이번에는 김성근 감독이었다.
마운드를 조련하기 위해 영입된 김 감독은 91년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라 롯데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에 덜미를 잡혔다.
92년에는 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롯데에 무너졌다.
김 감독도 2년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공격 야구를 추구하는 우용득 감독이 뒤를 이었다.
박영길 감독 시절 타격코치로 '팀 타율 3할'의 신화를 일궈냈던 우 감독은 신인 양준혁과 김성래, 이종두 등을 앞세워 호쾌한 야구로 관중몰이에 성공했다.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전에서 LG를 3승2패로 누른 뒤 해태와 맞섰다.
성준, 김상엽, 김태한, 박충식이 마운드를 지켰지만 선동열과 조계현이 이끄는 해태에 역부족이었다.
2승1무4패로 준우승의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우 감독은 94년 시즌과 95년 시즌에 잇따라 5위에 머물면서 지휘봉을 놓아야했다.
댓글 많은 뉴스
李 대통령 "돈은 마귀, 절대 넘어가지마…난 치열히 관리" 예비공무원들에 조언
尹 강제구인 불발…특검 "수용실 나가기 거부, 내일 오후 재시도"
李 대통령 "韓 독재정권 억압딛고 민주주의 쟁취"…세계정치학회 개막식 연설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
정청래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 곧 장관님 힘내시라" 응원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