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100년의 숨결-(3)아메리칸 드림

입력 2003-02-17 15:01:58

⑦향후 과제

로스앤젤레스(LA)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도시에 형성돼 있는 '코리아타운'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 대도시의 일부를 한글 간판으로 완전히 도배한 코리아타운의 모습은 정착에 성공한 한인들의 탄탄한 경제력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 주류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채 끼리끼리 모여 사는 폐쇄성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어 못하는 교민 수두룩

LA의 한 교민은 '미국에 10년을 살아도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한인들이 수두룩하다'고 전한다.

이 정도면 코리아타운은 미국 주류사회와 거의 단절돼 있는 폐쇄적 커뮤니티라 할 만하다.

이같은 코리아타운의 모습은 미국 이민 100년에 걸쳐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데 성공한 한인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미국 땅에서 생활하며 나름의 영역을 개척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한 이민 한인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일궈낸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약자에 불과하기에 이들이 주류사회에 완전히 안착하기 위해 앞으로 반드시 넘어야할 장벽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한미연합회(KAC) 찰스 김 사무국장은 '경제력으로 미국 정착의 초석을 완성한 한인들은 이제 미국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오명을 털어 내고 미 주류사회에 완전히 정착해 진정한 의미의 '코리안아메리칸(Korean-American·한국계미국인)'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며 '이를 위해 한인들은 특유의 민족적 폐쇄성과 개인주의 성향을 극복하고 경제력에 턱없이 못미치는 정치력을 신장시켜 미 주류사회에 한인의 존재를 부각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안-아메리칸' 삶 찾도록

한인 사회가 풀어가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로 꼽히는 사항은 미국 사회내에서의 정치·사회적 역량 강화. 한인들은 지난 1992년 'LA흑인폭동'을 통해 한인사회 전체의 권익 보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력이 아닌 사회적인 영향력, 즉 정치력이라는 사실을 이미 절감했다.

그러나 미국 전체의 평균치 이상에 올라선 경제력에 비해 한인들의 정·관계 진출률은 턱없이 낮다.

맨손으로 건너온 한인들은 경제적인 '성공'과 자녀 교육에만 온 신경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2000년 미 상무부 인구조사국 조사결과 한인 취업자의 미 공직 진출 비율은 최하위권인 9.95%로 일본계(18.57%) 및 필리핀계(15.76%) 중국계(12.78%) 등에 크게 뒤진다.

대신 자영업 비율은 타 민족에 비해 2, 3배 이상 높은 19.91%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공직진출 비율 최하위권

한인 출신인 LA 경찰국(LAPD) 폴 킴 커맨더는 '한인들은 대부분 공직에 진출한 뒤 하급직부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고위직에 오르는 것보다 상업 등 자영업으로 단기간에 경제적 성취를 이루는 게 더 낫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지금 한인들은 스스로 미국 내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된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미 주류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교육으로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게 된 이민 2세대 이후의 고학력 한인들도 대부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편중 현상을 보여 왔다.

찰스 김 사무국장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한인들은 사회적 책임이나 공동체 의식이 미약해 대부분 '내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교육에 집중투자하면서도 자녀들을 소위 '돈이 되는 쪽'으로만 몰아갔다'고 말했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여성 한인 판사가 된 LA 카운티법원 태미 정 유 판사는 '이젠 이민 2세 이후의 젊은 한인들이 공직과 정치계 등 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한인 사회는 물론 미국 사회 전체에 기여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족 정체성 유지' 혼란 숙제

현지 '동화'와 민족적 '정체성 유지'를 둘러싼 혼란도 이민 사회가 해결해야 할 영원한 숙제다.

이민 2,3세 이후의 현지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한인 문화와 정체성의 소멸을 우려하는 기성세대들의 걱정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상당수 현지 세대 한인들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김치 같은 한국 음식도 거부하는 등 급속한 현지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도산 안창호의 장녀 안수산(88) 여사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미국에 더욱 동화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일본계 이민자처럼 완전히 동화돼 자취를 감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완전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유태인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절대 잊지 않으면서도 철저한 미국인이 될 수 있는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균형 갖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 100주년을 맞아 이민 1세대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 한인들은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주 한인 이민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미국에서 계속 뻗어나갈 코리안아메리칸의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인터넷에 미주 한인 각각의 가계도를 담는 '사이버 족보'를 준비하고 있다.

또 이민 초기 미주 독립운동백서를 발간하는 한편 이민역사관과 박물관도 건립해 이민 후예들에게 한인 고유의 숨결과 문화를 남긴다는 목표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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