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14일 대북 비밀송금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해명하고 사과한 것은 김 대통령의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노무현 당선자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에는 '국익을 위해 그냥 덮자'는 DJ식 해법은 국민정서상 불가능하며 이 문제의 해법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상 정치적 해결도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감사원 발표로 대북 비밀송금 사실이 드러난 이후 '대북 송금은 통치권 차원의 거래이며 국익 차원에서 진상공개와 사법심사 모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고집은 대북 비밀송금에 대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고 이는 이른바 '정치적 해결'을 통해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 모두가 사는 해법을 모색해왔던 노 당선자를 곤혹스런 처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여론의 압력에 못견딘 노 당선자측은 김 대통령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청와대측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여야 합의를 전제로 '국회에서의 관계자 비공개 증언'을 절충안으로 내놓았으나 노 당선자측을 설득하지 못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나온 김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시각이 종전의 입장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국민 호소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 대통령은 담화에서 "대북 송금은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의 대가로 지불한 것이며 이것이 실정법상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수용했다"고 밝혔다.
즉 대북 비밀송금은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며 송금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현대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어 김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문제가 됐으며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김 대통령과 정부는 대북 송금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며 다만 현대가 대북 사업을 독점적으로 따내기 위한 대가 지불을 승인한 것 이외에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없다는 것이 된다.
책임회피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또 대북 비밀송금의 불가피성도 함께 호소했다.
김 대통령은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남북관계의 이중성, 북의 폐쇄성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담화는 대북 비밀송금의 정확한 내용과 송금규모, 송금 루트 등에 대한 자세한 공개가 없었다는 점에서 '진상공개를 통한 국민설득'이 아니라 김 대통령이 자기 합리화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정도 수준의 사과와 해명으로는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이같은 여론의 흐름은 이미 특검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야당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킬 전망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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