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앞으로 5년

입력 2003-02-13 13:34:45

대통령 선거 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대구·경북은 여전히 휑한 모습이다.

현 정권에 대한 섭섭함과 새 정권 창출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다가올 5년에 대한 설계를 걱정해야 할 때다.

앞으로 5년은 지나간 5년이나 그전 5년과 또 다른 시·공간적 의미를 갖는다.

YS·DJ 두 권위적 민주투사 시대는 천천히 왔다가 천천히 갔다.

끈질긴 정치투쟁 끝에 정상에 올라선 두 사람은 인치(人治)의 늪에 빠져 기나긴 시련과 파국을 몰고 왔다.

그러나 MH(무현)시대는 눈 깜짝할 새에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TV 드라마가 현실로 바뀐 듯한 변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50, 60대들이 그렇다.

모든 힘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파괴력은 승(乘)으로 늘어난다.

우리는 이제 MH시대의 속도 즉 변화를 읽어야 한다.

시대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인식하자는 주문이다.

대구·경북으로서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전통적 가치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 지역발전을 답보 시킨 이유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반성해 보라. 기존 관습에의 안주가 가져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변화에 대한 거부가 지역을 역사의 주역 자리에서 밀려나게 해 오늘의 맥없는 모습을 낳게 했다.

국가의 동량 공급에서, 교육의 질 향상에서, 문화의 깊이에서, 경제력의 확충에서 계속 밀리고 말았다.

'한국의 자부심'이란 정체성을 상실 한 채 어딘가에 곧 흡수되어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은 곳이 있다면 구미·포항 정도일 것이다.

대구의 경쟁력이라면 한 개의 지방은행과 한 개의 소주회사로 대표될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경쟁력이 위태로운 수준이다.

행정, 교육, 의료, 산업, 언론 등 여러 분야가 그렇다.

앞으로 5년 새 시대에 필요한 지역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든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현상 고착적 문화를 추방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치적 맹목주의를 개선하고, 배타적 애향심을 버려야 한다.

촌락시대적 참견 문화와 정권에 기대려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 요인 중 하나는 맹목적 리더십의 선택이다.

시장·지사, 국회의원을 뽑으며 맹목적 정치 감정을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지역발전에 역행하는 선택이다.

리더십이 무사안일에 빠져도 제어할 길이 없어진다.

특정 정당 출신이 아니면 아무리 능력 있어도 발을 못 붙이는 이런 엘리트 선발방식으로는 지역을 성공시킬 수 없다.

선거가 있기도 전에 당선자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풍토에서는 변화가 생성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경쟁과 이유 있는 이변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무소속 시장·지사가 나올 수 있어야 하고, 여성 시장·40대 지사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외국인 CEO, 청년CEO를 거부감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배타적 애향심도 시대에 맞게 손질될 필요가 있다.

애향은 우리 공동체에 구심력을 주는 미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애향은 때로 우리 사회를 안일하게 만들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게 만든다.

지나친 애향은 자기정체로 이어진다.

더 이상 애향이 경쟁력이라는 가치에 우선되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지금 우리 지역이 살기 위해서는 신사고를 수용하고, 기업·외부투자를 끌어들이며, 국제행사와 잔치를 모아야 한다.

그 밑바탕은 개방이다.

이 지역에 투자하거나 기업을 세우면 50년 지역기업과 꼭 같은 대접을 해줘야 한다.

텃세를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외부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한다.

지역 발전의 또 다른 조건 중 하나는 남의 말을 않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주눅들게 하고, 언제나 하던 방식을 고집하면 무슨 변화가 생기겠는가. 남을 비평하되 결과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한 절차, 괴상한 방식, 유치한 시도가 용납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 지역의 활성을 높이는 길이다.

남 참견 대신 자기충실에 전념하는 것이 지역을 돕는 길이다.

정권에 기대려는 자세 또한 버리고 가야할 유산이다.

손 안대고 코 풀려는 안일함, 비정상적인 통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몫이다.

그런 슬기롭고 당당한 노력 없이 감 홍시가 절로 입에 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먼 산만 바라보며 정부를 원망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태산준령(泰山峻嶺) 경상도의 본모습이란 그런 것이다.

앞으로 5년, 대구·경북이 한국 역사의 중심으로 재등장할 터전을 닦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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