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대-학교많고 학생적어 생존 갈림길

입력 2003-02-13 13:34:45

전문대학은 '지방대 위기'라는 높은 파고를 가장 먼저, 또 직접적으로 맞고 있는 고등교육기관이다.

그동안 경쟁력을 상실한 많은 대학들은 이런 지방대 위기와 학생수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이제 존폐의 기로에 놓임으로써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1970년 전국 26개 전문학교, 5천800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전문대는 2002년 현재 158개 대학에 재학생 수만 60여만명에 이른다. 전문대 입학정원이 현재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40%를 넘어설 정도로 양적 팽창이 급격히 이뤄졌다.

하지만 외형 위주의 교육정책으로 인해 이제 전문대가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인재 양성이나 기술 개선, 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전문기술교육을 뒷받침할만한 교육정책 부실과 사회 구성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학생과 학교, 기업 나아가 우리 사회가 그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전문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고교생 자원의 급격한 감소다.

지난해 전국 전문대의 정원 미달이 2만3천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각 전문대마다 정원 채우기가 어려운 현실에 당면해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학교재정을 학생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입학생 자원부족은 당장 학사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 따라서 대학들의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학생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학은 문을 닫아야할 상황에 처한 것. 지역에만도 대구 7개, 경북 18개 등 모두 25개의 전문대학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별화, 특성화에 성공해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학도 있지만 경쟁력 상실로 인해 교육 의욕마저 상실한 대학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뿐 아니라 전문대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방학도 없이 입시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교수들은 각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게 교수들의 공통된 얘기다.

심지어 전문대 교수들이 고교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할 상황에 도달했다.

대구지역 한 전문대 교수는 "학기중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입시철만 되면 담당 고교를 정해 매일 입학 상담과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며 "이런 유치 노력에 대해 일선교사들의 반응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일부에 국한된 얘기지만 교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접대나 편의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비애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양적 팽창에 따른 전문대 위상 추락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또 전문대학들은 4년제 대학과 치열한 학생 유치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4년제 대학 선호현상이 숙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그동안 전문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제자리를 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 2003학년도 입시에서는 대학 입학정원이 학생수를 웃돌아 전문대 합격자들이 대거 4년제 대학으로의 상향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져 전문대마다 비상이 걸린 상태다.

또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의 편입생 모집인원만도 5만9천여명에 이르고 있어 전문대 입장에서는 산 넘어 산이다.

취업을 고려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전문대 편입지원이라는 일부 역전 현상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전문대생들이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학을 고려하는 등 산업기술인력 양성이라는 전문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퇴색하고 있다.

전문대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들의 의식 또한 전문대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비단 전문대생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신세대들의 가치관이나 직업관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렵고 힘든 3D업종을 피하고 쉽고 편한 것만 좇아가는 세태가 낳은 부작용인 것이다.

많은 전문대 졸업생들이 전문기술인이라는 본래 역할과 기능을 외면하고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서비스나 판매, 영업 등 직종을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사 제조업 등에 취직한다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얘기. 영남이공대 김춘중 교무처장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공계열 기피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개개인의 능력에 맞지 않는 낮은 대우와 사회적 지위 등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학벌중심의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의식과 세태도 전문대와 이공계열을 기피하는데 한 몫하고 있어 갈수록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전문대 정책도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의 전문대 재정지원사업 예산을 보면 지난 1997년 938억원에서 2002년 1천785억원으로 5년새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실제 많은 대학들이 산업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인력을 양성하는데 실패했다.

정책 부재 탓이다.

교육부가 전문대의 특성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학교와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기술 인력양성 프로그램 개발 및 유도,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안되고 있다.

최달곤 영진전문대 학장은 "학생 수 감소 등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성화와 내실있는 교육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며 "외국의 사례처럼 전문대가 기업현장인력의 장단기 재교육 및 취업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전문대 위기 타개책을 제시했다.

이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전문대학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 기업, 교수, 학생, 학부모 모두 새로운 시각에서 전문대 문제에 접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게 학교 현장의 공통된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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