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3-아파트 개조 열풍

입력 2003-02-13 09:24:52

아파트 리모델링 및 구조변경의 개념이 변하고 있다.

낡은 아파트 개조가 아니라 새 아파트를 입주 전에 고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집을 좀 더 넓게 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를 자신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다.

한창 입주가 진행중인 수성구 만촌동의 메트로팔레스. 20% 안팎의 입주율이 말해주듯 주민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내엔 리모델링 및 구조변경 업체들의 차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린다.

아파트 단지 출입로는 리모델링·구조변경 업체들의 컨테이너 사무실로 북새통이다.

거대한 아파트는 끊임없이 드릴 소리 망치 소리를 쏟아내는 중이다.

'불법 개보수를 하지 맙시다'라는 관할구청의 호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낀다.

각 동의 출입구마다 '불법 개보수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불법 개보수의 성행을 방증한다.

이미 670여 가구가 거실·방 확장공사로 구청의 원상복구 명령을 받은 달서구 감삼동 드림시티. 한쪽에선 구조변경한 집을 원상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고 다른 쪽에선 구조변경에 정신이 없다.

단지 내 곳곳에 '구경하는 집' '리모델링의 모든 것을 느껴보세요' 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아파트 구조를 변경한 입주자들의 한숨소리도 크다.

결혼 18년 만에 26평짜리 내 집을 마련했다가 원상복구 명령을 받은 드림시티 입주자 박모씨는 "식구는 많고 집은 좁아 작은 방 2개를 넓혔다"며 "다른 아파트들은 구조변경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왜 우리만 제재를 하느냐"며 불평했다.

쓰레기도 골치다.

메트로팔레스와 드림시티 등은 단지 곳곳에 깨진 벽돌이나 뜯어낸 벽지, 장판 등이 흩어져 있다.

업체들이 공사 후 그대로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주변은 건축폐기물 처리장 같다.

특히 입주전 구조변경은 입주자들이 관리 감독하지 않아 쓰레기 처리는 고스란히 입주자의 부담이 되기 십상이다.

쓰레기는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처리비용을 놓고 주민들간의 갈등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

관리 사무소가 입주 전 구조변경이나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한 가구와 하지 않은 가구, 또 공사규모·폐기물 쓰레기 처리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리 사무소측은 '공사 폐기물 반출 확인증'을 받은 후 공사 잔금을 치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파트 전문 건설업체 직원인 김기영씨는 신규 입주 아파트에 갈 때면 허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애써 지은 집을 뜯어내는 광경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근무하는 회사는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명한 회사. 분양권을 팔아도 브랜드 프리미엄이 몇 천만원 붙을 정도로 알려진 회사다.

그러나 다 짓고 나면 태반이 구조변경의 칼을 맞는다.

"멀쩡한 자재를 뜯어내고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김씨는 아파트 단지 곳곳에 뜯어낸 바닥 타일, 벽지, 벽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가 건축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말한다.

"아예 마루 전체를 다 뜯어내고 이탈리아제 대리석을 까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럴 바에야 새로 집을 짓는 게 경제적이죠". 김씨는 전용면적 25.7평짜리 아파트의 거실과 방 2개를 확장하는 데 700만원 안팎, 41평일 경우 1000만원이 든다며 자원의 낭비를 안타까워했다.

아파트 구조변경에 관한 법률은 일반의 인식보다 훨씬 엄격하다.

아파트는 기둥이 따로 없고 벽이 기둥역할을 하도록 설계된다.

따라서 기둥역할을 하는 내력벽 철거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

비내력벽도 철거 외에 신축 또는 이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비내력벽이라도 모두 철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과 발코니는 반드시 벽으로 구획되어야 한다.

발코니를 거실화 했을 땐 전용면적 확대로 재산세가 늘어난다.

또 일부 가정에서 발코니에 흙을 깔고 관상수를 심기도 하지만 이 또한 불법이다.

발코니는 다른 공간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면 요즘 유행하는 리모델링이나 구조변경 작업은 한두 가지씩 법률을 위반하기 일쑤다.

특히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거실과 발코니 사이의 벽체 또는 문틀의 제거, 방과 발코니 사이의 벽체 또는 문틀의 제거는 불법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같은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거실 및 작은 방 확장이 이미 일반적 현상인 만큼 금지보다 법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천(대구시 남구 봉덕동)씨는 거실 및 작은 방 확장이 가능한 아파트와 불가능한 아파트를 따로 건설, 분양가에 차이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큰 마음먹고 시행한 구조변경이 꼭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아파트 거실을 확장한 주부 김모(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자책한다.

김씨는 "베란다 바닥에 열선을 깔았는데도 외풍이 심해 겨울엔 춥고 장마철엔 빗물이 새 물을 퍼내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지난 1월 강추위 땐 베란다 벽면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또 빨래를 널 공간도 좁아져 불편하다고 덧붙인다.

임모(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는 잡동사니를 가려주던 뒷 베란다가 없어지면서 집안이 더 지저분해졌다고 후회한다.

김모(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씨는 거실을 넓게 쓰기 위해 후면 베란다를 주방으로 개조했는데 겨울엔 수도 파이프가 얼기 일쑤라고 말한다.

김씨는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저층은 개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 '참공간' 이명희 소장은 "베란다는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는 완충지대"라며 "베란다를 없애고 거실을 확장하면 집을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겨울엔 훨씬 춥고 여름엔 훨씬 덥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약자가 있는 집은 거실확장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주부 김영희씨(대구시 수성구 신매동)는 구조변경의 성행은 기존 아파트가 마음에 쏙 들지 않는데서 기인한다며 아파트도 이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여러 구조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에 공사를 시작한 아파트는 입주자가 구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계약시 거실과 방의 크기 및 인테리어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롯데건설의 심철영 소장은 머지않아 주문형 고급 아파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시와 울산시 등 행정관청들도 주민들의 민원을 고려, 건교부와 구조변경 및 리모델링 관련 대책을 논의중이다.

대구시 달서구청 건축계 담당 정달화씨는 그러나 전용면적 확장과 건축물 완충부 문제 등 여러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묘안이 현재는 없다고 말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