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여러모로 가능성 있는 두뇌집단이다.
역사의 곳곳에서 넘쳐나는 천재성을 보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이라는 신념을 갖게 한다.
이런 잠재력이 근대에 되살아나 새마을운동의 원동력이 됐다.
신생 한국의 88올림픽 유치도 그런 민족적 자산에 의존한 바 컸다.
IMF 극복을 위해 금모으기가 벌어지고,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일궈낸 것도 민족의 남다른 품성 때문이다.
▲요즘 그런 믿음이 산산이 깨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어제의 한국과 너무 다른 2003년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며 "이럴 수가?"를 되뇌게 된다.
무두증(無頭症) 환자의 거듭되는 방종을 연상시키는 시대상이다.
근검절약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가치다.
그것은 좁고 척박한 땅에서 우리를 생존시키는 정신이고 기술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는 여전히 좁고 척박한 땅에서 산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나라다.
요즘 우리는 그것을 잊은 듯한 모습이다.
▲젊은 사람들이 저축을 않는다고 한다.
인생에 대한 오만이 저축의 의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250만을 넘어서고, 많은 사람들이 개인 워크아웃을 기웃거리고 있다.
근로의욕을 심어야 할 자리에 놀고 먹는 꿈을 심어준 결과다.
그 뿐 아니다.
로또복권이 구세주가 되어 국민 모두를 근심걱정 없는 낙원으로 인도해주고 있다.
일 않아도 밥 먹여주고, 칭얼대면 밥 떠 먹여주고, 사행의 꿈까지 안겨주는 이상한 나라다.
정부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을 이리 퍼주고 저리 퍼주고, 기업의 호주머니까지 뒤져 허영을 충족시키는 판이다.
안 살림은 이미 난장판이 됐다.
곳간이 아무리 그득해도 이런 정신자세로는 두 대를 넘기기 힘들다.
주변의 큰집들이 비약하면 한 대 만에 가세가 기울 수도 있다.
▲문제는 바깥살림까지 겉돌아 간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든, 주한미군이 떠나든, 미북이 전쟁을 치던 남의 일처럼 오불관언이다.
이게 제 정신일까. 새 정부가 불안한 것도 나라의 안살림 바깥살림이 별 문제가 없는 듯 보는 시각이다.
안으로는 기존체제를 깨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틀린 일은 아니지만 주변의 큰집들이 일어서면 우리의 안방까지 내줘야 하는 사실은 고려에서 제외된 것 아닐까. 민족의 생존이 걸린 치명적 경쟁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헤아려 주어야 할 것이다.
바깥 살림 역시 서투르고 안일하다.
정제된 목소리가 표출되지 않고 여러 사공들의 거친 고함들만 계속되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왜 이리 마음이 고달파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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