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경북도 '존재의 이유'

입력 2003-02-06 13:25:24

풍운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일본의 도쿠가와(德川) 막부는 가이에키(改易)라는 제도를 통해 지방의 영주(다이묘)들을 꼼짝 못하게 장악했다.

중앙정부인 막부가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란 13개의 의무사항을 정해놓고 이를 위반할 때에는 가차없이 영지를 줄이거나(減封), 변방으로 내몰아(轉封) 버렸다.

심지어 영지몰수나 신분박탈 또는 할복을 명하는 극약처방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수십만섬의 영지와 만만찮은 군사력을 갖춘 다이묘들을 복종시킨 평범한 비방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감사권과 인사권 단행이라 할까.

근년들어 위축 일로를 걸어온 경북도의 자화상에 도쿠가와 막부의 지방영주 견제책인 가이에키가 오버랩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느 시골 군수의 노골적인 저항에 대한 웅도 경북도지사의 속수무책.

관선시대만 같아도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도백(道伯)의 고향지역 부군수 임명 협의에 대한 옛 부하의 거부권 행사라니. 민선시대만 아니라면 도쿠가와 막부처럼 가이에키 흉내라도 내볼 텐데.

전국 광역단체장 중 최고의 득표율로 3선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도백의 무력감은 오늘 경북도의 위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아! 옛날이여.... 도청의 '나으리'들은 솔직히 옛날이 그립다.

경북도내 시장·군수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고을 수령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과시하던 그때가. 그런데 지금은 '부'(副)자를 달고 나가는데도 민선 자치단체장과 지방 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다니.

자체 사업이 극히 미약한 데다 예산 운용권을 통한 지방 견제도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다.

징계권이 시·군에 있으니 감사권은 있으나마나다.

힘쓸 만한 자체 사업도 별로 없는 데다 전체도 예산의 70%를 일선 시·군에 내려보내고 있지만 찔끔 지원으로 생색도 나지 않는다.

결국 얼굴나는 쪽은 시장·군수들이다.

주민들도 도민으로서보다는 시·군민으로의 정체성이 강한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도청 무용론'까지 대두됐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도로서는 가이에키는 고사하고, 오늘날 일본의 광역(都·道·府·縣)~기초(市·町·村)자치단체간의 유기적인 부단체장 교류 관행과 고유의 업무영역 구분이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경북도의 이같은 '서글픈 현주소'에도 변신의 기회가 왔다.

새정부 출범을 앞둔 최근의 지방분권화 움직임이 그것이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차제에 도(道)가 중앙정부에 직속된 '지방정부'가 되든지, 아니면 중앙정부의 일부인 '국가기관'이 되든지 명확한 위상 정립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중앙정부가 광역자치단체에 걸맞은 업무를 과감히 이양해 주고, 일선 시·군에 위임하고 있는 일들도 깨끗하게 넘겨주도록 해달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지방분권이 어떻게 진행되고 행정의 계층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경북도의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지방자치 시대의 바람직한 도정의 미래는 무엇일까. 가이에키도 좋고 위상강화도 좋지만, 경북도의 진정한 '존재의 이유'는 도민행복을 위한 멸사봉공에 있는 것이 아닐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