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모성의 반란

입력 2003-02-06 09:39:18

돌아보면 감수성이 예민하게 자라 오르던 사춘기 무렵부터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던 의식이 일종의 모반처럼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은 어머니의 삶을 답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물론 나의 딸들도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종종 빈정거리는 말투로 웃어 보이긴 하지만 과거 우리가 자랐던 시절의 아픔과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비록 전후세대이긴 하지만 시대적 그늘을 배경으로 자라난 우리 세대는 지금 가파른 세월을 견뎌온 어엿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발랄해진 딸들을 가지고 있다.

엄연하게 속성이 다른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삶 속에서 애써 부정하고 싶은 불평등의 역사를 읽어내고 있는 듯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나서 시행착오처럼 존재하고 있는 반쪽짜리 인간의 삶을 좀더 온전하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우리들의 세대가 가질 수 없었던 실로 발랄 경쾌하고 영악한 노련함이 들어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도 상당부분 늘어난 추세이지만 모성이 감당해야 할 모럴의 범위는 어중간한 범위 안에서 주춤거리는 느낌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모성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 특수한 공백을 결코 남성이 채워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했던가? 나는 자유롭고 싶지만 내 어머니만큼은 희생적인 모성의 역할을 거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내 안에도 엄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해야 하는 건 당연히 어머니라는 논리가 같은 여성임에도 무의식 속에 나와 내 딸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섬세함, 안온함, 따스함, 은은함 등은 대대로 누려야 할 여성의 희망이며 절대적 가치인 지도 모른다.

모성을 지닌 여성은 같은 여성임에도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훌륭한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악몽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요즘의 여성들은 더 이상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 말의 내면에는 모성의 절대적 가치를 포기한 반모럴이 담겨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좀더 당당한 여성의 권위를 누리고 싶은 여성들의 희망이며 외침일 것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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