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맞벌이 부부 육아 해결사

입력 2003-02-06 09:41:39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자녀 돌보기가 또하나 힘든 과제이다.

반쪽 가정은 특히 더하다.

벌이를 나가려 해도 아이가 걱정. 돌봐주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도 그냥 방치될까봐 두렵다.

가난한 맞벌이 부부에게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

◇감나무골 이야기= 대구 대현2동 '감나무골'에는 이런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감나무골 공부방'(952-0431)이 있다.

옛 신도극장 뒤의 이 동네는 노점 나가는 상인, 편부모 가정, 홀몸노인, 장애인, 공장.일용직 근로자 등 가난한 이웃을 중심으로 1만1천400여명이 모여사는 주거환경 개선지구. 지난달 27일 찾았을 때, 이 동네에서는 영화 세트에서나 볼 수 있을 허름한 블록 담장들 뒤로 동네를 허무는 굴삭기 소리가 한창이었다.

감나무골 공부방의 현재 학생은 초교생 16명, 중학생 2명이라고 했다.

터전은 방 3개와 부엌, 작은 마당을 갖춘 대지 33평짜리 허술한 집. 전세로 얻었다는 공부방 마당은 '사방치기' '비석깨기' 하느라 아이들이 칠한 분필 자국으로 가득했고, 공부방 안 벽에는 아이들 이름 밑에 '겨울방학 동안 읽을 책들'이라는 이름 아래 목록이 적혀 있었다.

겨울방학 중에 감나무골 아이들은 이 공부방에서 오전.오후 각 2시간씩 봉사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지냈다.

학기 중에는 오후 2시쯤부터 저학년반(1.2학년) 고학년반(3~6학년)으로 나뉘어 모인다고 했다.

봉사하는 선생님들과 문제지를 풀고 학교 숙제도 하며, 글쓰기.종이접기 지도를 받거나 간식도 함께 만들어 먹는다.

아이들은 자원봉사 선생님들을 '이모' '삼촌'이라 불렀다.

"처음엔 아이들이 학교에 가든말든 관심없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빈곤의 터널에서도 빠져 나가게 할 수 있음을 모두들 알게 됐습니다". 공부방 일을 총괄하는 윤주수(35)씨는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잘못하면 더 따끔하게 야단치며,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씻고 어지럽힌 것은 스스로 치우게 한다고 했다.

"힘들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말이 거칠고 의기소침해 있던 아이들이 공부방에 다닌 후 점점 밝게 변합니다.

다음 주쯤에 공부방도 일주일 가량 쉴 예정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더 섭섭해 합니다".

◇순수 자원봉사 공부방들= 감나무골 공부방은 국가 지원 없이 민간 후원금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그 액수는 월 100여만원. 아이들 간식비, 공부방 유지비, 자원봉사자 교통비에도 빠듯한 돈이다.

그래서 윤씨는 가끔 과자를 갖다 주는 슈퍼마켓 아저씨, 고기를 잘라다 주는 정육점 아저씨가 고맙기 그지 없다고 했다.

대구시내에는 이런 순수 민간 공부방이 서구에 4개, 북구에 1개 등 5개 운영되고 있다.

서구의 공부방은 '배꼽마당'(평리1동, 559-9202) '희년공부방'(비산2.3동, 565-5662) '민들레공부방'(비산4동, 562-5155) '날뫼터공부방'(비산2.3동, 555-5174) 등.

봉사자들이 땀흘리는 만큼 성과도 적잖아, 서구의 동수(10.가명) 가족에게 새 희망을 준 것도 바로 공부방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누워버린 남편, 철없는 아이들, 그리고 가난… 지치고 절망했지만 연년생 세 아이가 공부방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엄마(38)는 다시 용기를 얻어 일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8세, 9세 동생도 이제는 얼굴이며 발을 스스로 씻을 줄 알고 동네 어른들께 인사도 곧잘 하게 됐다.

공부방들의 기여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과 관련, '날뫼터' 남은경(36.여)대표는 "대구의 민간 공부방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며 "사회복지요원들이 배치된 각 동마다 민간 공부방이 운영돼야 한다"고 했다.

민간 공부방은 서울 60여개 등 전국에 200여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지원 공부방들= 민간 공부방 외에 국가 지원 형태의 공부방도 있다.

대구에 있는 것은 복지관 부설 25개와 정부 위탁 운영 공부방 29개(시 지원 24개, 구청 지원 5개) 등.

그 중 인건비.운영비.교재비.특별활동비 등으로 월 200만원 가량씩을 지원받는 복지관 공부방은 '방과 후 교실'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저소득 가정 혹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학습지도를 맡거나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제일종합사회복지관의 초교생 대상 '초록담교실'에서는 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 등이 문제 풀이 중심의 학습지도와 미술.컴퓨터.요리.무용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신당종합사회복지관엔 '어린이 기자교실' '동화구연 교실'이 있다.

가정종합사회복지관 이지은 사회복지사는 "방과 후 교실 참가 어린이 중에는 배울 기회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소외된 경우가 많다"며, "복지관 공부방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함으로써 가족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남산4동 정원이(가명.여.중2) 삼남매가 많이 의지하는 곳도 복지관 공부방.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인 정원이네 집에는 일때문에 엄마.아빠가 밤 10시는 넘어야 귀가한다.

그때문에 정원이뿐 아니라 초교6년생인 남동생, 초교5년생인 여동생은 모두가 남산4동사회복지관의 방과 후 교실을 또하나의 소중한 '가정'으로 생각한다.

집이 비좁아 다락방에서 살아야 하는 만큼 특히 방학 때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는 것.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 방학 숙제 검사를 받고, 컴퓨터를 배우며 요리 만드는 법도 배운다.

오후 2시쯤 공부방에 오는 삼남매는 이곳에서 오후 7시쯤 밥을 먹고, 주말에는 라면.우동.빵.우유를 받는다.

한국복지재단에 연결돼 월 6만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공부방 덕분.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곳을 찾은 뒤 엄마(37)도 신문 배달과 부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일용직인 아버지(42)도 더욱 힘을 내게 됐다.

이정순 사회복지사는 "정원이네는 전화비를 못내 전화가 끊길 정도로 가난하지만 이제 가족 모두가 밝게 생기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 공부방에는 25명의 어린이들이 찾고 있지만, 중산층 자녀들처럼 밝아 보였다.

선생님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좋아합니다" "장난쳐서 미안합니다"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

◇곳곳에 어려움= 동사무소.경로당 등에 만들어져 있는 '위탁 공부방'은 서구에 8개, 달서구에 7개, 남구에 4개, 북구에 3개, 동구에 3개, 중구에 2개, 수성구.달성군에 각 1개씩 있다.

위탁 공부방에는 월 80만~120만원 가량이 지원되고 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느티나무배움터'(칠성.대명동) 경우 대구시로부터 월 100만원, 구청으로부터 월 60만원 가량을 지원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순수 자원봉사 공부방은 물론이고 위탁 공부방들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위탁공부방 경우 정부 지원금으로는 내실있는 운영이 불가능, 이미 주위 성금이나 자원봉사자들의 회비, 동네 주민들의 도움에 상당폭을 기대고 있다고 했다.

'느티나무' 경우 공식 지원금으로는 교사 인건비나 공부방 관리비에도 빠듯한 실정이어서 월 60만~70만원의 후원금과 교사들이 내는 회비 30만원으로 겨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고 했다.

실무자 임현수씨는 "그나마 우리는 형편이 나은 편이고 별도의 프로그램 운영을 엄두도 못내는 공부방도 많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자원봉사자 구하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 공부방이 상근자 외엔 자원봉사자를 한두명밖에 확보하지 못해 자체 특별 프로그램 운영이 버겁다는 것. 임씨는 "월 40만~50만원을 주겠다고 해도 오후 2, 3시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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