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부터 장애인이 됐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지체장애 1급 김수복(68.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씨. 그의 곁에는 늘 책이 있었다.
불구의 몸이어서 초등학교도 못 나온 그는 학교에 다니는 같은 또래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배우고 나머지는 혼자 독학해 글을 깨쳤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10대 시절 책방의 책을 모두 빌려 읽고 '학원' 잡지를 구독하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혼자서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불구가 된 김씨는 22살이 되던 해 기적처럼 결혼을 하고 너무나 행복했으나 삶은 여전히 피곤했다.
아버지가 남긴 논 727평, 밭 1천여평을 어머니, 아내가 농사를 지어 자식 5명 등 여덟식구가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이 버티며 살았다.
1968년 닭 500마리로 양계를 시작한 김씨는 자전거를 개조, 손으로 운전하는 세발자전거에 달걀을 싣고 영천지역 곳곳을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돈을 벌면서 김씨는 자신이 처음 가장으로서 구실을 한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표 나는 사람이 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영천곳곳을 구석구석 다니며 장사를 하다보니 어느덧 영천의 명물이 돼 있었다"는 김씨는 "몸도 성치 못한 사람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며 영천시민들이 도와줬고 당시 천명기 보건사회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70년 가을 어느날 양계장의 닭을 몽땅 도둑맞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에 빠졌다.
김씨는 양계장에서 달걀을 사서 행상을 시작했고 1980년부터는 경운기 엔진을 단 조립식 화물차량(일명 딸딸이 차)을 만들어 달걀 100판 이상을 싣고 다니며 팔았다.
이후 10여년동안 김씨가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상품은 달걀에서부터 부식, 생필품 등으로 종류가 늘어났고 김씨의 차도 트럭으로 바뀌었다.
지난 1990년 대구에서 장애인 운전면허를 취득한 김씨는 이후 지금까지 장애인용으로 개조한 1t 화물트럭에 달걀, 두부, 콩나물, 양념류, 부식류, 휴지, 생필품 등 70여종의 품목을 싣고 산골 오지마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그동안 김씨의 단골 고객들도 이제는 영천시내가 아닌 면단위 농촌지역과 노인들로 바뀌었다.
월요일은 고경면, 화요일 대창면, 수요일 화남면, 목요일 임고면, 금요일 북안면, 토요일 자양면, 일요일은 화북면으로 코스를 정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나가 장사를 한다.
농촌에서 '만물시장차'로 불리는 김씨의 차는 들판에서 농사일에 지친 주민들에게 스피커를 통해 신나는 가요를 들려주며 친구가 돼 주곤 한다.
"요즘 시골에는 빈집이 너무 많아요. 그나마 젊은 사람은 아예 없고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들이 떠나면 없어질 마을들도 더러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아요".
김씨는 어떤 마을에 오천댁으로 불린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다가 다음주에 가보니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외상값을 받지 못했다며 요즘 농촌의 실상을 전해준다.
1996년 임고면으로 집을 옮긴 김씨는 슬하의 5남매중 4남매를 출가시키고 76세 된 누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함께 고생했던 부인은 지난 1986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김씨는 10여년전부터 매년 쌀과 라면, 현금 등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있다.
불행은 나누면 적어진다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평생을 외롭고 힘든 장애인의 삶을 살아온 김씨에게 삶의 의욕을 복돋워주고 늘 그의 곁에 있어준 것은 책과 문학이었다.
10대 시절 '학원'잡지에 글을 투고해 입선경력이 있는 김씨는 1999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주최 제12회 전국 장애인 종합예술제 글짓기에서 입상했고 작년 경북도 장애인재활협회주최 제8회 재활수기 현상공모에 출품한 수기가 장려상을 받았다.
또 한국장애인문인협회가 발간하는 문학잡지 '솟대문학'에 1999년에 시 '아내' 2000년 수필 '할머니 손금' 2001년 수필 '병아리' 2002년 수기 '첫사랑'이 게재됐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과 한을 글로써 표현할 때 느껴지는 후련함 때문에 문학에 빠져든다"는 김씨는 "나를 기다리는 노인 고객들 때문에 힘 닿는데까지 차량행상을 하고 새해엔 문학활동도 더 왕성하게 할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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