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할아버지는 책상을 벗처럼 끼고 사셨다.
낡고 오래된 책상 앞에서 하루를 열던 그 새벽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
할아버지의 글읽는 소리에 이슬이 내리기도 하고 문 밖 배롱나무가 꽃을 피운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머니께 꾸중을 들으면서도 사랑방에서 자기를 고집했다.
어쩌다가 집이라도 비우는 날에는 불호령을 내릴 만큼 할아버지는 책을 아끼셨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고서가 도난 당할까 우려하셨음이다.
값 나가는 희귀본은 아닐지라도 책은 할아버지의 자존심이었다.
세상이 점점 배금주의로 변해 가도 할아버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셨다.
운율을 실어 글을 읽다가 가끔씩 환한 미소를 띄우며 무릎을 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낡은 코트에 한두 권의 책이 든 가방. 할아버지의 외출은 늘 검소하고 당당했다.
그러나 책상 앞에서 새벽을 여는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그 추억의 편린 때문일까. 나도 책에 파묻혀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
어릴 때부터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대체로 책과의 친밀감도 높다.
부모의 관심거리는 역시 아이에게도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손만 뻗으면 책을 볼 수 있는 환경, 즉 사회 전체가 도서관화 될 때 이상적인 독서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가 애정을 가지고 책을 사서 보는 것은 어떨까.
억지스럽게 책을 읽히고 독후감을 강요하다보면 역기능도 생긴다.
감성을 깨워 삶에 열정을 가질 때 비로소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기초체력을 외면한 채 스피드 내는 일에만 훈련된 선수는 마라톤 경주에서 쉽게 지치고 만다.
이제는 틈틈이 좋은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을 접하며 인생을 향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자. 시간을 잊고 어딘가에 몰두하는 모습이야말로 실로 아름답지 않은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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