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미디어 선거' 有感

입력 2002-12-19 00:00:00

16대 대선(大選)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건 뭐니뭐니해도 '미디어 선거'가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거의 혁명적으로 급변할 디지털문화에 선거도 역시 그 영역속으로 수렴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잠깐 선보였지만 이번엔 후보들의 TV토론으로 그 공간을 축소해버리니까 지금까지의 '선거 고질'로 치부됐던 '돈선거', '동원선거'가 우선 확연하게 퇴조의 기미를 보였다.

자유당때의 '고무신선거', 3~5공까지의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그 '금권선거'는 이제 더 이상 존립할 터전을 잃고 말았다.

한강둔치나 대구수성천변에서 100만 군중이 운집했다는 '청중동원'의 그 폐습도 확실하게 사라졌다. 그에 소용되는 엄청난 선거비용조달에 따른 관폐도, 민폐도 격감될게 틀림없다.

'미디어선거'가 몰고온 엄청난 선거풍토의 급변된 모습이고 이건 앞으로 더욱 정화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 '정치개혁'이라 할수도 있다.이런 특장점(特長点)과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이번 TV토론에 대한 총평은 '실패작'이라는게 여론이다. TV토론은 후보들간의 차별성을 찾고 그에 따라 유권자들이 누굴 선택할 것인가를 결심하도록 하는게 궁극적목표이자 존립근거이기도 하다.

3차례에 걸쳐 6시간동안이나 듣고보고 했는데도 TV를 끄고 난뒤에 머리에 남는 인상적인게 없다는게 중론이다. 몇가지 쟁점을 빼놓고는 모두가 "내게 국정을 맡기면 잘해나갈 것이다"는 개괄적인 것밖에 들은게 없도록 짜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하품까지 하며 지루함을 참다못해 급기야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반응이 나왔다면 뭔가 잘못된게 틀림이 없다.

또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에게 마치 각 부처의 전문 실무자 공채시험을 치르듯 한 질문 내용도 그렇고 그걸 1분안에 대답하라고 다그치니 후보들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그걸 쳐다보는 유권자들의 머리속에 뭔가 남아 있을게 없을건 뻔한 이치 아닌가.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실패와 뭐가 다른가. 중위권과 상위권의 차별성이 없어지고 오히려 TV토론에 관한한 일약 스타덤에 오른건 권영길 후보였다. 결국 '2강1약'구도가 아니라 거꾸로 '1강2중 구도'로 뒤바꿔 놓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도출해내 버렸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 임하는 일부 유권자들은 '깜깜이 선거'라고 혹평하고 있다.

각 후보들의 백화점식 공약들이 거의 비슷하게 믹서돼 닮은꼴이 돼버렸으니 정견은 들었으나 누가 무슨 공약을 어떻게 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임기응변에 능한 재치가 오히려 돋보이는 희안한 토론으로 변질되면서 '무게'라곤 전혀 느껴볼수도 없었던게 사실이었다. 1, 2회 정도는 국정철학과 굵직한 공약을 듣고 최소한 마지막 토론은 후보들간의 쟁점만을 놓고 심도있는 격론을 벌이게 했어야 했다.

예컨대 이번 대선은 뭐니뭐니 해도 정권교체냐 사수(死守)냐가 큰 쟁점인만큼 지난 5년간의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심판이 우선 심도있게 다뤄졌어야 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그걸 어떻게 논리적으로 방어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공격자가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다.

또 막판 쟁점인 수도권이전을 비롯 노·정(盧·鄭)단일화나 대북문제는 양강(兩强)간 현격한 견해차가 있었던 만큼 이 세가지만 주제로 자유로운 공방전을 벌이게 했어도 차별성은 확연히 드러날수도 있었다. 이런 터를 제공하지 못하다보니 유세내용 따로 TV토론 따로 할 수밖에 없고 그게 검증없이 흘러가버리니 '선동'정치판처럼 돼버린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 터진 '노·정 공조파기'소동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부실한 TV토론의 탓이라고 할수도 있다.

물과 기름과 같은 '노·정 공조'가 어떻게해서 이뤄질수 있느냐에 대한 공방전을 장외의 정대표에게 미리보여줘 면밀하게 분석하게 했더라면 '공조 재조율'을 했든지 아니면 일찌감치 '파기선언'을 해버림으로써 선거전략을 달리 짤수도 있는 '시간'이라도 벌수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런 맥빠지고 미지근한 TV토론이라면 차라리 없애는게 좋겠다는 무용론까지 일 정도로 이번 TV토론은 너무 '공정성'에 치우치느라 정작 중요한 '변별력'을 잃는, 실패로 귀착돼 버렸다.

이런 결과를 예측못했다면 그건 토론방법에 대한 공론화를 게을리한 '기획실수'라 할수 있지만 그 결과를 알고서도 강행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그 동기를 따져볼 '중대사안'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전문패널들의 질문위주로 한 지난 대선때의 TV토론 방식은 왜 외면해버린 것인지도 함께 궁금해진다. 결과적으로 우린 이번 대선에 임하면서 늘 낯익은 후보이지만 정작 그들의 정견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도 못한채 투표장으로가는 국민이 돼 버렸다. 실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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