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의성 금성 산운마을

입력 2002-12-02 14:23:00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의성읍에서 동쪽으로 12km 들어간 금성면 소재지에서 다시 동쪽으로 2km 더 들어가면 금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산운(山雲)이라는 맑고 고운 이름처럼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흔히 영남의 대표적 전통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성주 한개마을 등을 꼽지만 조선시대 중.후기의 고가 수십채와 정자.별당.후원(정원)의원형이 잘 보존된 산운마을 역시 이들 마을에 비해 뒤질게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산운마을은 조선조 명종.선조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을 입향시조로 400여년을 세거해온 영천(永川) 이씨 감사공파(監司公派) 집성촌이다.

입향시조로부터 내리 3대가 급제했고 대를 이은 급제자와 유.학.절.효(儒.學.節.孝)로 명문을 이뤘으며, 경산(耕山) 이태직(李泰稙) 선생을 비롯한애국지사도 많이 배출한 선비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이 대감촌, 또는 양반마을로 불려지는 연유이기도하다.

79가구 201명이 살고 있는 마을은 6.25때 상당부분 소실됐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옛정취 가득한 고택 40여호가 마을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풍수학자들은'영남 내륙의 명산인 금성산(531m)과 비봉산(671m)을 병풍삼아 위천이 감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선녀가 명경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 절묘한형국'이라고 말한다.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산운마을은 과문한 사람의 눈으로 봐도 명당이자 길지임이 느껴진다. 우선 마을어귀의 250년된 학록정사(鶴麓精舍)와400년 수령의 회나무가 우뚝서 그 장대함이 방문객들을 공연히 주눅들게 한다.

요즘은 경북 북부의 유교문화권개발 사업으로 마을 전체에서 건축물의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지만 고색창연한 옛정취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입향시조 추모와 후학 양성을 위해 조선 영조 16년(1750년)에 건립한 학록정사(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 건축물로 꼽히며, 현판은 당대의 명필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친필이다.

학록정사를 지나면 마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소우당(素宇堂: 경북도 전통건조물 제13호))이 객(客)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 선생이 1800년대에 건립했고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한 것으로 전해온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별당. 경북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잘 보존된 조선조 후원(정원) 양식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연상케 하는 연못과 아름드리 소나무 등 각종 수목들로 꾸며져 운치를 더해준다. 별서(別墅;들 같은 곳에 한적하게 지은 집)건축 연구에 더없이 좋은 건축물이라는 학계의 평가 속에 학자들의 발길도끊이질 않고 있다.

41년째 고택 등 문화재 보수 일을 전문적으로 해왔다는 목수 최창수(57.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씨는 "산운마을은 비교적 고가옥이 많은데다 씨족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보기드문 전통마을"이라며 "특히 소우당 후원은 전통정원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우당 바로 이웃은 운곡당(雲谷堂). 이목(李牧)의 5대조로 형조판서를 지낸 운곡 이희발(李羲發, 1768~1850년)이 영월부사 시절인 1800년대초기에 건립한 건물. ㅁ자형 앞채의 좌우에서 전면으로 돌출된 날개집의 전형으로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 전통건조물 제11호로 지정돼 있다.

이병직의 조부 이홍(李弘)이 1900년쯤 건립한 점우당(漸于堂)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75호로 지정되는 등 고색창연한 고가들이 수백년간 마을을지켜오고 있다.

우리 눈에 익은 정겨운 황토담, 이끼 낀 기와지붕, 세월의 때가 묻은 고택의 마루, 금방 누가 들어오기라도 할 것 같은 솟을대문, 오장육부까지 시원해지는정자의 바람…. 푸근한 정감이 하염없이 객의 발길을 잡아끈다.

또 입향시조 이광준이 관찰사 시절 당대의 문장가 최립(崔笠), 서예가 한호(韓濩.한석봉), 화가 이정(李霆)의 금강산유람기인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는최립이 글을 짓고 한석봉.이정이 각각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해동삼절첩(海東三絶帖)으로 불리는데 영천 이씨 문중에 소중히 간직돼 오고 있다.

매년 4월5일 입향시조의 향사에는 전국에서 후손들이 몰려온다. 고향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고향이 있다는 것은 험난한 세파를 이겨나가는 가장큰 힘이 아닐는지….

우리 전통이 홀대받고 사라져 가는 요즘 우리 것을 지키고 가꿔가는 한 가문의 노력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온다.'내고향은 옥경(玉鏡)이요…. 금성산 상상봉에 거처한 지 오랜지고 천마봉 옛이름은 옥녀로 고쳐짓고/ 이땅에 처음올때 황학(黃鶴) 타고 내렸기로 이 산 이름 금학(金鶴)이요/ 앞산에 퉁소불 때 봉황이 춤추기로 그 이름 비봉이요…. / 이 아래 큰 동네는 만산채운 얽혔으니 상서로운 빛이 찬란키로 그 이름 산운이라' (이태능(李泰能. 1887~1961)의 옥녀사(玉女辭) 중).

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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