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무질서(상)-얌체만 득실…단속의지 실종

입력 2002-07-23 15:28:00

월드컵기간 중 전세계를 놀라게 한 성숙된 시민의식이 사라져버렸다.여름철 피서지는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고, 도심은 도로변 불법 주·정차, 무단횡단, 불법 노점상, 야외에서 고기 굽는 식당,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때문에 '무질서 천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단속인력 부족 등의 핑계만 늘어 놓은채 적극적인 단속을 외면하고 있다. 민선 자치단체장들도 인기에 영합, 주민들의 눈치만 살피면서 무질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잖다.곳곳에 만연된 무질서 실태 및 문제, 대책을 점검해 본다.편집자

△무질서 실태=무더운 여름철이 오기 무섭게 시내 주택가 식당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골칫거리'로 낙인돼버렸다.

영업을 할 수 없는 곳인 식당 바깥에 테이블을 마구 설치,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은 소음, 냄새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또 유원지, 공원 등지에서의 행락객 쓰레기 무단 투기는 연례행사가 돼 버린지 오래고 산, 계곡, 바다 등 휴가철 피서지도 불법 노점상들의 바가지 상혼이 뿌리박혔다.

아파트 단지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주차구역외 주차, 도로변 불법 주·정차, 인도위 불법 적치물로 보행권 침해, 남의 집 앞에 쓰레기 봉투를 가져다 놓는 얌체주민, 심야의 고성방가 취객 등 우리 사회는 월드컵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심각한 '질서불감증'이 만연돼 있는 실정이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오물투기, 금연장소 흡연, 음주소란, 자연훼손 등 기초질서위반 단속 건수가 지난해 37만여건, 올들어서도 6월까지 12만여건이나 적발됐다.

△겉도는 단속=무질서가 사회병폐화되면서 무질서 관련 각종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행정당국은 적극적 단속은커녕 나몰라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 모 구청 관계자는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바귀면서 단속업무가 모두 구청으로 이관, 늘어난 업무에 비해 단속인력은 제자리"라며 "특히 여름철 주민 민원중 야간 민원이 많지만 공무원이 퇴근한 이후여서 단속자체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민선시대 이후 자치단체장들이 지나친 인기영합행정탓에 단속의지가 사실상 실종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비판도 비등하다.

감사원은 지난해 전국 18개 기초자치단체의 '생활주변 불법·무질서 행위 지도단속실태' 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지자제 실시후 일부 단체장들이 선거를 의식, 불법 주·정차, 불법 광고물, 환경오염 등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 기피, 처벌 유보 등 미온적인 조치로 일관해 기초질서 위반행위자가 늘어 국민생활 불편이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대구시 모 구청 경우 지난 97년을 '주·정차 질서확립 목표의 해'로 정해 주·정차 위반차량을 강력하게 단속했지만 단속요원들의 과잉단속에 의한 민원유발이 급증한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98년부터 완화 지침을 시행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불법 주·정차, 쓰레기 투기 등 기초질서 위반행위는 주민 불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만큼 적극적 단속이 행정기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단속인력 핑계, 선심행정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민선 단체장의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