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음주 왕국'

입력 2002-07-20 14:42:00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을 때 사탄이 찾아와서 물었다.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포도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아주 달고 신맛도 알맞게 지닌 과일입니다.

발효시키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이 되지요"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나도 좀 거들까요". 사탄은 양·사자·돼지·원숭이를 죽여 그 피를 포도나무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 그 결과 포도주를 빚어 마신 노아는 먼저 양처럼 유순해지고, 좀 더 마신 뒤 사자처럼 강해졌다. 많이 마셔 돼지처럼 지저분해졌으며, 또 더 마셔 원숭이처럼 시끄럽게 됐다.

▲가장 올바른 사람으로 칭송되던 노아마저 술을 마시면 이 정도였으니, 보통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술 먹은 개(犬)'라는 우리 속담이나 '첫 잔은 갈증 때문에, 둘째 잔은 즐거움을 위해 마시지만, 그 다음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는 서양 격언도 비슷한 뜻이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지만, 술로 인한 폐해는 클 수밖에 없다.

▲음주로 인한 한해 동안의 폐해를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산출하면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3.5%인 16조원에 이르며, 한해 사망자도 2만3천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제대 보건대학원 김광기 교수는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개정 공청회'의 주제 발표를 통해 1997년 한해 동안 술로 인한 질병 치료비, 생산성 감소, 사망에 따른 손실 등이 이 같이 나타났고, 2000년 한해 음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9.2%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번 월드컵 축구대회 때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기는 했으나, '가장 성공한 세계화(?)'는 단연 술 마시기가 아닐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의 음주량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지난해 영국 발렌타인 스카치 제조회사가 한국인을 겨냥한 '발렌타인 마스터스'를 만들었을 정도다. 술에 있어서는 '큰 손'이자 '큰 입'인 '음주 왕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민들은 홧김에 소주를, 부유층은 향락을 위해 고급 위스키를 마셔대는 게 우리 풍토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주류에 세금이나 기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다. 술꾼들에게는 우울한 이야기지만,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논리로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술(酒神)은 전쟁(軍神)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멋과 맛으로 마시던 옛사람들의 슬기와 '아침 술은 돌, 낮 술은 구리, 저녁 술은 은, 3일에 한번 마시는 술은 황금'이라는 탈무드의 격언도 되새겨볼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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