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요절한 영혼들을 위한 명상

입력 2002-07-16 14:14:00

오래오래, 아니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다하는 순간까지 생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 없이 지니고 있는 본능적 욕망이리라.

"이제 그만 살고 죽어야지". 입버릇처럼 내뱉는 늙은이의 소망이란 게 기실 새빨간 3대 거짓말에 속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만 봐도 역시 마르고 닳도록 살고싶어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그러기에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지푸라기처럼 내던진 역사 속의 인물들을 우리는 의사(義士).열사(烈士)라 이름하여 기리고 받드는 지도 모른다.

세상천지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목숨 스스로 내놓고 홀연히 떠나기가 어디 그리 말처럼 가벼운 일인가. 그것은 엄숙한 실존적 두려움이다.

그 서늘한 두려움에 결연히 맞설 수 있는 꿋꿋한 용기, 신실한 사명감, 고매한 희생정신, 거기에 우리는 주례사 투의 입에 발린 찬사를 넘어 깊은 숭앙의 마음까지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며 만주 홍구공원과 일본 황실에 각각 폭탄을 투척했던 윤봉길.이봉창 의사, 그리고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고 달려오는 신칸센 열차에 몸을 던진 의인 이수현….

이런 분들의 거룩한 죽음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숭고하고 거룩하기에 그 꽃다운 이름은 이 나라 역사가 다하지 않는 한 길이길이 유전하리라.

군자는 의로운 일에 민첩하고 소인은 자기 이익에 민첩하다고 한 논어의 말씀대로라면 그들은 필시 대인의 풍모를 지녔던 분들이다.하기에 진정한 윤리며 도덕이란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의 편이어야 하리라.

그러나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아니하여 지켜보는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이따금 독립투사.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생계조차 어려운 고된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내 일인양 마음이 아프다.

백이 숙제 같은 의인은 절개를 지키려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데 반해 도척 같은 악인은 갖은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

이 불가해한 역리(逆理)를 보면서 사마천은 "천도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가" 라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의롭게 살다간 영령들의고귀한 정신에 마음으로라도 답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리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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