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미혼 동창을 만났을때

입력 2002-07-15 14:04:00

전업 주부들에게 결혼 안한 동창생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우연히 길거리에서, 혹은 종종 결혼 안한 동창생과 연락해 만난다는 30대 주부들의 숨겨둔 이야기를 들었다.

♣ 울분형

결혼 안한 동창이 굳이 우겨 외식을 하고 나면 그녀가 밥값을 내도 왠지 속이 쓰리다. 오랜만에 폼 잡으며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집으로 돌아올 땐 "그 돈으로 고기를 사서 식구끼리 먹는게 더 좋을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콩나물값 깎느라 '쫌생이'가 돼서일까. 괜히 기죽기 싫어 음식값을 내기라도 하는 날엔 더욱 속쓰리다.

맨 얼굴에 립스틱만 바르고 외출했다가 멋있게 차려 입은 동창을 만났을 때 짜증이 난다. 친구가 "너 아줌마 다 됐구나"하고 생각 없는 말을 던지면 우울해진다. 학창 시절엔 내가 공부도 잘했고 더 재능 있는 문학소녀였는데….

함께 쇼핑이라도 하는 경우엔 더욱 속이 상한다. 동창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볍게 고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기죽기 싫어 하나쯤 싼 것을 집어드는 내 모습은 때때로 가련하다.

♣ 자랑형

가능한 한 남편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자주 꺼낸다. 결혼 안한 동창이 제 아무리 잘나도 남편이나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 사업을 해서 돈을 잘 번다거나 나이에 비해 큰 평수 아파트에 산다면 일부러 초대도 한다. 신형 냉장고, 고급 가구가 있다면 금상첨화.

결혼한 여자에게 아이는 무엇보다 큰 재산이다. 별로 공부를 못해도 잘한다고 뻥튀기하거나 학원에서 받은 흔해빠진 상도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아이들 애교에 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덧붙인다. "괜히 세월 보내지 말고 너도 빨리 결혼해라".

그 한마디로 승리를 굳히는 셈이다. 그러나 내 처지가 무척 나쁜 경우라면 우연히 옛동창을 만나도 모른 척 한다. 동창이 "혹시…"라며 말을 걸어와도 "아닌데요, 사람 잘 못 보셨나보죠?"라며 잘라버린다.

♣ 시기형

어느 날 문득 텔레비전에 동창이 나온 것을 보면 잠이 오지 않는다. 책을 냈다거나 전시회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갖가지 미사여구로 치장을 하고 있지만 속은 아마 썩었을 것이라고 자위한다.

그리고 남편이나 이웃의 주부들에게 자랑한다. 절친한 동창생이며 학창시절 나는 그 친구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고 은근히 강조한다.

벌써 서른 중반을 넘긴 여자들이 젊은 연예인을 보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부럽다 못해 얄밉다.

해외로 자주 나가는 동창들은 웬만한 명품은 다 갖고 있다. 그 명품이 사실 무척 부러우면서 짐짓 "그 명품에 눈을 맞추는 한 넌 절대 결혼 못할 거다"라고 속으로 험담을 실컷 퍼부어 준다.

♣ 측은형

전문직 여성인데다 세련되게 차려 입어도 결혼 못한 동창은 안쓰럽다. 걸핏하면 판사, 검사, 의사 등과 맞선을 봤다고 말하지만 부럽기는 커녕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남편은 판사도 변호사도 의사도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라도 의논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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