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여성 宗親會

입력 2002-07-15 00:00:00

우리 선조들은 '남편이 곧 하늘이다(夫者妻之天也)'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죽어서 글자가 되데 따 지(地), 따 곤(坤), 그늘 음(陰), 아내 처(妻), 계집 여(女) 글자가 되고, 나는 죽어 글자가 되데 하늘 천(天), 하늘 건(乾), 날 일(日), 볕 양(陽), 지아비 부(夫), 사내 남(男), 아들 자(子) 글자가 되어 계집 여 변에 똑같이 붙여져서 좋을 호(好)자로 놀아를 보자…".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대목으로, 춘향의 집을 찾은 이도령이 첫날밤 건넨 농이다. 여기에도 '남자는 하늘'관이 어김없이 드러나 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부부유별(夫婦有別)에도 남녀 차별의 의미가 담긴 건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대화에 이어 현대화란 깃발 아래 정신적으로도 서구화로 물들어 오랜 세월 여성을 짓누르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도 남녀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지 앞에 항복을 했다. 그래서 근년 들어서는 '출가외인'인 딸들이 종중재산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르기도 했다.

▲이번엔 국내 첫 여성 종친회가 생겨 화제다. 전북 고창군의 박(朴)씨 여성 150여명은 지난 11일 모임을 갖고 사단법인 '신라오릉(新羅五陵)보존회 고창군 여성종친회'를 결성, 숭조(崇祖)·애종(愛宗)·육영(育英) 등 3대 종친회 정신 계승을 선언했다.

고창 지역의 박씨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를 찾자는 데 뜻을 모았던 이들은 이날 회장(박인선·64·고창제일병원 이사) 등 간부진을 구성했으며, 곧 신라오릉보존회 본부에 등록해 여성 종친회로 공식화할 움직임이다.

▲신라오릉보존회는 경주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밀양·함양·순천 등 모든 박씨 종친회가 가입한 연합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보존회의 관계자는 "여성들이 종친회를 결성한 것은 일종의 반란이지만, 일단 보존회 차원에서 검토는 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 관계자도 밝혔듯이 남녀 평등이 강조되는 21세기라지만,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 성씨와 족보를 따라가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종친회 결성 움직임과 관련, '여자들이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무슨 종친회냐'는 등 비난이 많았으나 고창 지역의 박씨 여성들이 자주 모임을 가져오다 결성에 이르렀다 한다.

이 모임측은 강하게 부인하지만 오는 12월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한 움직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한다.

아무튼 세계화란 전통적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는지도 모른다. 고루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남녀평등'이란 남성의 여성화나 여성의 남성화보다 여성은 여성답고 남성은 남성다울 때 진정한 의미를 얻게 되는 건 아닐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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