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석문동 계곡

입력 2002-07-12 14:02:00

백두대간의 주맥이 지나는 '첩첩산중' 경북 봉화군에는 한여름도 비켜갈 만한 깊은 계곡들이 수두룩하다. 남한강 발원지 우구치계곡,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대현천, 사미정계곡, 옥방천, 홍점계곡, 석천계곡 등 저마다 풍부한 계류와 암반을 골고루 갖춘 비경들이다.

그 중에서 으뜸은 고선계곡이라고도 불리는 구마계곡. 그러나 군 홈페이지에 관광자원으로 홍보할 만큼 이름났지만 막상 현지주민들에겐 피서객들이 탐탁지 않다.

지난 9일 취재 기자와 만난 계곡 입구의 고선2리 이장 정인승씨는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을 훼손시킬 수 없다"며 군에 '비지정 관광지'를 해제시켜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몇 년간 먹고 마시고, 버리고 가는 피서에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럴까 싶다. 군청에선 사람들을 모으고 동네에선 막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게 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처럼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명 피서지를 피해 조용히 지낼 만한 계곡은 없을까? 춘양면 석문동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꼭 들어맞는 선경지대다.

춘양면 소재지에서 영월 쪽으로 88번 준국도를 따라 10㎞를 가면 애당1리에 이른다. 애당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시멘트포장길 2㎞를 따라가면 동이정 마을(애당2리). 이곳에서 오른쪽 폭이 좁은 시멘트길이 석문동 방향이다.

왼쪽으로 8㎞ 정도의 계곡은 참새골이다. 백두대간을 구간종주하는 등산로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계곡길은 백두대간 주능선인 고직령, 곰넘이재, 신선봉(1,305m)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야영공간이 있어 가족단위의 물놀이나 피서를 즐기기에는 참새골이 적당하다.

그러나 좀더 호젓하고 깊은 계곡의 맛을 즐기려면 석문동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석문동은 참새골보다 계곡의 폭은 작지만 물은 맑고 깨끗하다. 계곡이 깊은 만큼 바위도 많고 물의 흐름도 빠르다. 참새골이 여성적이라면 석문동은 남성적이다.

승용차는 동이정에서 2㎞정도 더 갈 수 있다. 시멘트 길 폭이 좁아 교행하는 승용차가 있을 경우엔 서로 양보해야 오를 수 있다. 좌우 양쪽으로는 고랭지배추밭이 이어져있어 길이 지루하지 않다.

민가는 띄엄띄엄 있을 뿐 인적이 드물다. 어느 순간 시멘트 포장길이 끊겼다 싶으면 정면으로 통나무집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엘림휴양원. 이곳이 석문동이다.

그러나 막상 동네 이름의 기원이 되는 석문(石門)은 이곳서 1시간 가량 더 올라가야 볼 수 있다. 휴양원 왼쪽으로 비포장길이 숲의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터널에 들어서면 왼쪽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로 귀가 멍멍해진다.

더위는 벌써 저만큼 물러났다. 너무 깨끗해 멈칫거려지지만 옥같은 물에 발만 담가도 신선이 따로 없다. 바닥이 훤히 비쳐 눈부실 만큼 청정계곡이다. 옥수가 바위틈으로 이리저리 구르고 흘러내려 물안개까지 자욱할 때 쯤이면 계곡은 환상에 젖는다. 힘들었던 여행의 피로도 이내 사라진다.

석문은 돌대문처럼 버티고 서있는 높이 15m가량의 거대한 바위다. 그 사이로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천연 요새지인 셈. 정감록이 꼽은 십승지 중 하나다. 이곳을 지나 신선봉까지는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신선봉 구간은 백두대간에서도 최고 오지에 속하는 산줄기로 알려져있다. 능선의 굴곡이 심해 독도에 능하지 않은 사람은 헤매기 십상인 곳이다. 신선봉 남쪽 산자락에 꼭꼭 숨겨진 골짜기가 석문동이니 계곡의 깊이를 짐작할 만 하다.

"가끔 길잃은 등산객들이 내려올 뿐 이곳으로 오르는 사람도 드물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 6년째 휴양원 일을 하고 있는 양복례(60·여)씨는 밤이면 별빛이 쏟아지고 수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석문동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영주IC를 빠져나와 봉화까지 내달린다. 봉화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울진쪽으로 달리다 법전면을 지나고 소천면 못가서 왼쪽으로 강원도 영월쪽 88번 도로로 갈아탄다.

애당1리 애당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어 2㎞를 가면 동이정 마을이다. 왼쪽길은 참새골, 오른쪽은 석문동 가는 길이다. 88번 도로를 타고 영월 쪽으로 더 들어가면 우구치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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