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구구절절 애틋한 사랑

입력 2002-07-10 14:02:00

"식물도 주인의 사랑을 안다고 하였다. 22년 함께 살아온 아버지는 네 눈빛, 네 걸음걸이의 보폭만 보아도 너의 하루 일과가 어떠했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단다.

사랑하는 딸아,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에 사랑을 듬뿍 담아 너에게 주고 싶구나…. 요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더구나. 여자 얼굴이 고우면 3년을 사랑받고 살지만 지혜와 마음이 고운 여자는 3대를 사랑받고 산다더라".

지혜.충고.안타까움 빼곡

엄하고 과묵하기만 할 것 같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학업을 잠시 중단한 큰 딸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전하는 편지. 몇 날에 걸쳐 장문의 글을 쓰는 동안 눈물로 얼룩졌을 편지 곳곳에는 딸에게 주는 지혜와 충고도 행간마다 빼곡히 배어 있다.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회장 박정희)가 지난 5월부터 실시한 '아버지가 딸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신춘석(53.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의 편지 사연중 일부이다.

이번 응모편지 중에는 먹을 것 입을 것 풍족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때로는 병마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저릿한 아픔과 방황하는 딸을 염려하다 못해 숨김없이 가하는 질타 등 생생한 사연들이 담겨져 있다.

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에게 주는 충고와 시집간 딸에 대한 그리움과 염려를 담은 사연도 있다. 세파에 휘청이면서도 자식 커가는 재미 하나로 온갖 어려움을 잊고 버텨오는 아버지들의 깊은 속정이 담긴 편지글이기에 더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깊은 속정 담아 전한 여운

17년 전 늦가을, 딸을 얻는 순간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서정수(49.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씨의 편지에는 그날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네 엄마의 진통을 애써 몰라라 하고 출근했지만 마음은 종일 전화기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남자아이를 바랐던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어! 손가락 발가락이 열개네'라고 외쳤었지. 그렇게 태어난 너는 아빠.엄마에게 보석같은 보배였어. 작은 아빠 눈 닮지 않고 크고 검은 엄마 눈을 닮아 난 신에게 감사했었지".

세월따라 한뼘씩 커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 그러나 어느덧 고1이 된 딸을 염려하는 아빠의 걱정이 이어진다. "너만의 공간을 가꾸기 위해 엄마 아빠를 피하는 너를 지켜보면서 섭섭하고 속상하단다. 말 수도 적고 내성적인 너의 성격이 겁도 난단다. 장학생이 아니라도 좋고 표창장 없어도 좋단다. 가고 싶은 대학에 꼭 들어가 엄마.아빠의 희망이 되어다오".

운동을 하는 딸에게 난생 처음 편지를 쓴다는 강두순(대구시 동구 입석동)씨의 딸사랑도 안쓰럽다. 합숙훈련, 전지훈련, 대회참가 등 일년 중 300일 이상을 집을 떠나 비어 있는 딸아이의 방을 한번씩 노크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강씨는 그러나 딸에게 거는 설레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처음 중1때 멋모르고 시작한 운동이 어언 6년, 이제 우리딸도 고3으로서 중요한 때를 맞이한 순간이 되나보구나. 가냘프고 연약한 어린 몸으로 운동(유도)을 해보겠다고 어리광을 부리며 아빠 허락을 받아내려고 하던 너, 그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대구시장배 체급별 유도대회 처녀출전에서 상대선수로부터 조르기 한판패를 당하던 날, 의식을 잃은 채 앰브란스로 병원으로 후송되던 일, 피멍이 든 채 잠들어 있는 너의 모습을 볼 때면 강심장을 자부하는 아빠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단다".

훌륭한 친구이자 상담사

쌍둥이 아빠 허명진(경산시 계양동)씨의 편지에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응급실로 보내놓고 안타까워 하던 7년 전 일이 그려져 있다.

"혼자 오기 심심해서 또 한 녀석을 앞세우고 세상에 나온 딸아, 건강한 네 오빠는 우렁차게 울어댔지만 너는 세상에 태어나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신생아 응급실로 옮겨졌단다.

1.9kg 미숙아를 병원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울기만 하더구나. 온몸이 마비될 확률이 50%라는 말을 듣고도 목으로 밥이 넘어가는 내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기적은 있었단다. 네가 태어난 지 한달쯤 되던 날 분홍빛 포대기에 싸인 채 내게로 오던 날은 잊을 수가 없단다".

아무리 자상하다 한들 엄마의 품보다는 따뜻하랴. 그러나 성적과, 진로, 인간관계 등을 고민하는 딸에게는 아버지는 휼륭한 친구이자 상담사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이들 편지들은 보여준다. 또한 언제나 철부지일 것만 같은 자식이 아버지의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도 군데군데 엿보인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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