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를 읽는 중요한 텍스트

입력 2002-07-06 14:46:00

김태식씨 著 '화랑세기'

신라때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국내 사학계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학창시절 이름만 전할 뿐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배웠지만 1989년과 95년 두 종류의 '화랑세기 필사본'이 공개되면서 이의 진위에 대한 논쟁이 국사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현재 중론은 이들 두 필사본이 가짜라는 것이지만 언론사 문화재.학술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식씨의 '화랑세기-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펴냄)를 통해 이 필사본이 가짜가 아님은 물론, 신라를 읽는 중요 텍스트로 간주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수많은 상충과 비합리성, 신라를 멸망시킨 승리자로서의 고려인이 쓴 승자의 역사서임에도 현재 국사학계에서 신라를 읽는 최고의 텍스트로 군림하고 있는 허구성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보지 못한 부분, 혹은 의도적으로 빠뜨리거나 왜곡했을 수도 있는 부분을 이 '화랑세기 필사본'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책은 모두 18장에 걸쳐 '필사본'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그 속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화랑' '포석정' 등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언급돼 순국무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화랑'은 충효를 강조한 김부식의 이데올로기를 일제강점기때 단재 신채호, 해방후 이선근 박사가 그대로 받아들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범국민상으로 꾸며졌다는 것.

그러나 백제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친구가 죽자 일주일만에 따라 죽어 '충(忠)'과 '신(信)'을 잘 실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화랑 사다함과 무관랑의 경우, 삼국사기에는 간단하게 전하지만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친구사이가 아니라 상하관계였으며 무관랑이 사다함의 어머니와 정을 통하다 사다함의 충고를 듣고 깊이 부끄러워하며 월성궁궐을 뛰어넘다 구지(溝池)에 빠져 죽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군사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필사본에는 이미 삼국시대때 만들어졌으며 그 의미도 단순히 노는 곳이 아니라 사당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월성 해자와 포석정, 35금입택, 분황사 옆 원지 발굴성과 등 최근에 이뤄진 각종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증명되고 있으며, 이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 아니라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베껴 적은 진본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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