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사유 그리고 삶의 성찰

입력 2002-07-05 14:09:00

한여름의 초입이어서 인가. 시적 사유와 삶의 성찰을 깊게 담은 시집들의 청량함이 새삼스럽다. 우리시대 최고의 시인과 일본 모더니즘의 선구자 그리고 대선사의 성찰과 깨달음의 시와 일기가 성하(盛夏) 무더위를 저만치 밀어낸다. 그만한 중량감이 있다.

"스스로 고뇌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8년만에 출간된 김지하의 신작시집 '화개'(花開.실천문학사)를 두고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김지하의 이번 시편들은 어떠한 고집이나 강요도 없다. 삶과 생명 그리고 우주에 대한 고요하면서도 웅숭깊은 울림을 부드럽게 전달해 줄 뿐이다. 그의 이같은 시적 성찰과 삶에 대한 사유의 확장은 슬픔에서 비롯됐다.

시편들이 지닌 간격과 틈 그리고 꽃핌 사이에 도사린 현실의 깊은 슬픔. 그러나 그것은 허황한 공허나 허무는 아니다. 슬픔 속에 움트는 생명의 깊이를 화폭에 난을 치듯 한 획 한 획 여백 속에 심어 놓았다.

원로시인 김춘수 선생이 처음 번역 소개하는 일본의 첫 모더니스트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의 시선집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민음사)는 인간정신의 외로움을 스케치한 동양적 초상화로 여전한 시적 울림을 가지고 있다.

"니시와키의 시는 현란하고도 슬픈, 풍요롭고도 쓸쓸한 패러독스의 세계를 보여준다 .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고대적인 즉 시대를 두루 통하는 동서고금의 시적 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만 표현 방법이 현대적일 뿐이다".

파격과 도전, 전위적 모험으로 이루어진 니시와키의 시세계를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전했다.이달로 입적 2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 선지식의 선구자 경봉 스님의 수행일기와 성찰을 담은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일세'(도서출판 예문)는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자연과 벗삼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80여편의 시와 20여개의 화두, 고승들과 주고받은 깊이 모를 편지글로 엮은 이책에는 한평생을 구도와 참선으로 일관했던 고승의 번뇌와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숱한 번민, 부질없는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집착과 마음의 독을 버리고 공(空).무(無).적(寂)의 자세를 견지하라는 고승의 그윽한 목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법정 스님의 평가대로 경봉 스님의 일기는 한국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증언록이자 우리 불교사의 귀중한 자료집이기도 하다.

창비시선으로 묶어낸 신경림 시인의 시집 '뿔'도 그간 잘 드러내지 않던 사적 얘기까지 곁들이며 한층 겸허하고 너그러운 품을 보여준다. 또 돌아간 지인들과 함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시편들도 새롭다. 자연스럽고 큰울림을 지닌 시세계를 가꿔온 노시인이 4년만에 내놓은 신작답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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