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떠나야 하겠느냐? 그러하옵니다. 허락하여 주오소서. 그런 생각으로야 목숨인들 온전하게 부지할 수가 있겠느냐…". 까까머리 소년은 총명이 물결치는 듯한 눈빛으로 스승 무공선사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이동인의 나라'는 격동의 시대 구한말, 나라의 명운을 위해 한 몸을 바치고자 했던 이동인 스님의 활약을 역사문학계의 거장 신봉승씨가 흥미롭게 형상화 한 소설이다.
신봉승씨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 개항의 선각자 이동인에 관한 문헌과 자료를 다년간 수집하고 심도 있게 연구하여 세권짜리 장편 소설로 묶어 냈다.
오경석, 박규수 등 개화 1세대들의 애국심과 개화에 대한 열정, 그들의 문도로 조선의 개화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이동인을 비롯, 김옥균, 유길준, 박영효 등 젊은이들의 활약을 훈구 세력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외척 민씨 일문의 정권 다툼 속에서 박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1866년)때부터 시작한다. 병인양요를 목도한 뒤 미지의 문명에 눈을 뜬 열다섯 살 소년 승려 이동인은 바다 건너 새로운 문명국으로의 밀항을 꿈꾼다.
명치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군비를 확장하여 조선을 침공할 즈음 이동인은 새로운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져가던 일본으로의 밀항에 성공한다.
이동인은 조선인 최초로 명치유신의 주역들과 교유하고 서양 외교관들과 접촉하면서 주일 영국공사관 2등 서기관 어니스트 사토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동인은 조선의 미래를 혼자서 짊어진 사람처럼 혼신의 힘을 불태운다. 이동인에 의해 서양 문물이 조선에 알려지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개화파 젊은이들은 구악의 일소를 외치며 개혁의 깃발을 세운다. 선각자의 고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이동인에게 신임장을 써 주면서 서양 외교관들과 조선의 개항과 수교문제를 의논하게 한다. 그러나 승려인 이동인이 고종은 물론 명성황후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조선의 지배 계급인 수구세력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양반이 어찌 중놈 따위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으리. 마침내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동인 제거를 모의한다.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3년전, 조선 근대화의 불꽃이었던 이동인 선사는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행방불명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1853년 동경만 우라가 항구에 들어온 미국군함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1868년 명치개원을 선포하게 될 때까지 1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선각의 젊은이들이 내란에 버금가는 혼란을 잠재우면서 '명치유신'에 성공, 정신적, 물질적 근대화를 이루어냈다.
저자는 일본과 달리 조선은 1866년 한강 양화나루에 들어온 이양선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똑같이 16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역사상 가장 걸출했던 선각자 한 사람을 암살로 죽였을 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16년간의 성공과 실패가 21세기로 들어선 오늘의 일본과 한국의 격차를 무려 133년이나 벌려 놓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소설속에 소개된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일본의 젊은 선각자들이 조국의 근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이동인의 나라'는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근원을 살피면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인 '명치유신'의 성공을 동시에 그리고 있어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하는 역사 교과서의 왜곡 문제 등 한일 양국의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동방미디어 펴냄, 각권 360여쪽, 8천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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