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싸움질 교도소 드나든 20대 대구구치소서 '독서지도사' 변신

입력 2001-12-15 00:00:00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3류 인생을 살아온 한 젊은이가 독서를 통해 새 삶을 준비를 하고 있다.

본드흡입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대구구치소에서 복역중인 성병권(20.가명)씨. 그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다.

중졸. 어머니가 간경화로 고인이 되고 남은 가족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81)와 뚜렷한 직업없는 아버지(61)가 전부. 목표가 없던 성씨는 친구와 어울려다니며 본드를 상습흡입하고 싸움질로 일관했다.

16세되던 97년 11월에 본드흡입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2달뒤 또 본드를 흡입해 징역 10월의 실형을 살았다. 출소 2주일뒤 폭력으로 징역 1년, 출소 6일뒤 본드흡입으로 다시 징역 1년. 그간 16세 소년이 20세 성인이 됐다.

성씨에게 '독서'라는 행운(?)이 찾아온 것은 지난 5월. 김천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기위해 대구구치소로 이감되면서 부터다.

"처음에는 반강제적으로 하루 6시간동안 이어지는 학습시간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해요."

성씨가 7개월여동안 대구구치소에서 읽은 책은 어림잡아 300여권. 하루 1, 2권씩 닥치는대로 읽었다. 소설 '어머니'를 읽으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7, 8명이 생활하는 소년수방에서 성씨의 별명은 '독서지도사'. 양서와 악서를 구분해 동료들에게 적당한 읽을거리를 추천할 수있게 됐다. 한자 실력도 부쩍 늘어 새로 입소한 ㄱ, ㄴ도 모르는 소년수에게 글을 가르쳐 신문을 읽게하는 보람도 느꼈다. 구치소 생활에도 적응못해 동료들과 곧잘 주먹다짐을 했던 성씨는 책을 읽으면서 풀렸던 눈동자에 생기가 나고 표정도 한결 온화해졌다. 사소한 문제로 주먹다짐을 벌이던 다른 소년수들도 독서를 하며 배움의 가치와 즐거움을 깨달아 감방문제는 완전 사라졌다.

성씨의 꿈은 문예창작. 다소 늦었지만 예술고 문예창작과와 대학 국문과에 진학해 글을 쓰며 넉넉지 못해도 어려운 사람을 도우는 삶을 그리고 있다.

성씨는 "내년 5월 출소하면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성실한 사회인이 될테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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