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들이 '헬렌켈러'가 되길 꿈꾼다. 자신의 아이가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언젠가는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다.
하지만 대다수 장애아 부모들의 교육방식은 비장애인들에 대한 교육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장애아들은 이런 교육방법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심한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 장애아들은 유아교육에서부터 어떤 방황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교육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구지역 한 장애어린이 교육기관의 재활프로그램을 들여다봤다.
◇이렇게 바뀐다
보청기를 착용하는 청각장애아들과 언어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구시 중구 '가원어린이청각센터(053-257-2275)'. 언어장애가 있는 영희(5.가명)는 올 초부터 5개월동안 매주 1시간20분씩 이 곳의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미술치료를 받기전 영희는 유치원교사들이 '손을 들' 정도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고집이 세 교사들의 말이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처음 들어와서도 영희는 마찬가지였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을 만지고 끄집어내면서 작업을 '거부'했다.
무엇을 물으면 "나는 몰라요".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집이 없어요". 엄마가 어디있니라고 물으면 "엄마 없어요". 무엇이든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네번째 발걸음부터 영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종이 붙이기와 천붙이기를 하면서 처음 흥미를 보였다. 그 다음주 흙작업에서는 작업시간이 늘어났다. 흥미가 생기고 집중력이 커진 탓이다.
5개월이 지나자 영희는 몰라보게 침착해졌다. 자기것만 챙기던 영희는 이제 친구들에게 자기 종이를 나눠준다. 영희에게 변화가 생긴 것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동석(9.가명)이도 미술치료를 받기전엔 소극적인 아이였다. 무엇을 물으면 모른다고 고개를 젖고, 행동에서도 몹시 위축되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석이의 상태는 그림에서도 나타났다. 처음 '가원청각센터'를 찾았을 때 동석이는 손과 발이 없는 자신을 그렸다. 그리고 가족을 그릴 때면 자신을 제일 작게, 그리고 제일 구석에 배치했다. 정서적 고립감과 환경에 대한 욕구불만이 그림에 그대로 나타난 것.
하지만 4개월이 지나자 동석이의 그림은 달라졌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꾸준히 받은 동석이는 인물화과제가 떨어지자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도화지 가운데 그렸다. 그리고 그림속에서 항상 찌푸리던 동석이의 얼굴은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림의 변화는 동석이의 행동과 태도변화로 이어졌다. 선생님에게 먼저 인사하고 먼저 무엇을 그리겠다고 얘기한다. 짧은 기간동안에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 동석이에게 자리잡은 것이다.
◇'그림'도 약이 된다
'가원어린이 청각센터'는 5, 6명을 모아 집단 미술치료실을 열고 있다. "엄마를 그리라고 하면 그리지 않는 장애 어린이가 있습니다. 엄마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리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자녀들의 장애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친 기대를 합니다. 비장애인들보다 떨어지면 애가 타는겁니다. 요즘은 청각장애아들도 보청기를 끼면 청각이 향상되기 때문에 부모들의 기대가 당연히 커지죠".
'가원센터' 미술치료실 서동희(55.여)실장은 장애 어린이들의 그림에는 거짓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 한 장은 아이들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곳을 거쳐간 아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낮춰 생각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
이런 아이들에겐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급선무. 꾸준히 그림을 그리게하고 무언가를 만들게한 뒤 결과물에 대한 진단을 해주면 아이들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장애아들이 유아보육시설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수용하기는 힘듭니다. 여러가지 여건상 이 아이들만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다보니 결국 장애아들은 갈수록 비장애아들과 학습능력이나 정서적 안정도 등에서 큰 격차를 나타냅니다. 미취학 장애아나 초교에 재학중인 장애아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죠". 서동희실장은 조기치료를 강조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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