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명소-성주 해동청풍비

입력 2001-11-23 15:45:00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에는'海東淸風(해동청풍)'이라고 쓰여진 큰 비석을 볼 수 있다. 자하(紫下) 장기석 선생의 충절을기리기 위해 유림에서 세운 것이다.

1867년 이곳에서 태어난 자하 선생은 집안이 가난하여 일찍 글을 배우지 못했으나 40세가 넘어 학문을 시작, 송준필 등 선비들과 교분을 맺고 후학을 가르켰다. 1910년 망국의 소식을 듣자 문하생들을 돌려 보내고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일본 왕의 이름으로 주는 소위 은사금을 거절하자 군수가 호출장을 보냈다. 이에 선생께서 "내목은 자를수 있지만 내 다리는 옮길수 없다"고 적어 보내자 순사들이 선생을 데리러 왔는데 그들 면전에 화로를 던져 성주서로 잡혀가게 된다. 이후 대구검찰로 이송된후 심한 매질과 고문을 당하면서 단식으로 맞섰다. 단식 11일만에 선생이 순국하자 전국 유림에서 선생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높이 3.2m, 너비 1.1m, 두께 45cm에 '海東淸風'이라고 쓴비석을 세웠다.해동청풍은 백이.숙제의 '백세청풍비'에 비유한 동방의 이.제라는 뜻. 일제는 해동청풍비를 처음에는민심을 우려 그냥 두었으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던 1937년 비를 깨어 땅에 묻어 버렸다. 이에 앞서 비를 깨버린다는 소식을 접한 부인이 이를 막기위해 비석 뒤곁 뽕나무에 목을 매 자결했다. 광복후 김구와 김창숙선생 등이 부서진비를 찾아 모아 현재의 모습처럼 쇳조각으로 복구하고 비 뒷면에 김창숙선생이 글을, 김구선생이 글씨를 썼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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