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1-11-22 14:22:00

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

이 시에서 벼를 백성으로 바꿔 읽어보자. 그러면 이 시가 쉽게 이해된다. 햇살 따가울수록 서로 기대고,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하게 살 줄 아는 지혜, 공동체주의가 소위 시의 주제인 셈이다. 지난 13일 서울 도심시위를 비롯해 전국에서 농민들의 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벼 농사는 근본이다. 산업화, WTO라고 해서 포기할 수 없는 우리민족의 삶의 정서가 아로새겨진 것이 바로 벼농사이다. 벼농사를 지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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