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헌영 세상읽기-수능시험과 입시제도

입력 2001-11-20 00:00:00

연례행사처럼 수능의 계절은 말썽 많은 철이다. 당국의 소 귀에 경 읽기 식 대응에 못지 않게 언론의 무책임한 입방아도 속타는 며느리를 부채질하는 시누이처럼 어지간하다. 문민정권 초기의 민심 이탈이 교육정책에서 비롯됐대도 과언이 아닌데 왜 그걸 당장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이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교육의 목적은 인격과 실력 향상이며 그 방법은 평준화이다. 그런데 목적까지 평준화 시키려는 기묘한 논리와 여론에 휘말려 오늘의 교육정책은 발목이 잡혀 있다. 이번 수능시험이 준 충격의 초점은 고3생들이 작년 졸업생보다 실력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학과 공부를 덜 하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른 교육'이며, 그렇게 하면 사교육비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 위에 설정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각종 전형과 여러 차례 치르는 입시 제도가 과연 한국적 풍토에 적합할까.

대체 공부를 덜 하고, 경쟁을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가 가능할까? 인생 자체가 경쟁인데 이를 입시에서만은 제외시켜야 한다는 논리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문제는 꼭 알아야 할 걸 가르치느냐는 교과 내용에 있지 공부하라는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르칠 걸 가르치고 그걸 정당하게 테스트하는 게 교육의 원칙일 터이다. 당연히 교육개혁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란 내용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가르쳤으면 테스트 방법도 공정하게 치르면 되는데 이를 교묘한 논리로 재주를 부리는 데서 입시제도의 혼란은 싹튼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선진국의 입시제도를 도입하는 걸 지상 목표로 삼는 한 우리의 교육은 혼탁을 거듭할 것이다. 사회적인 신뢰도나 평등의식이 낮은 한국적 풍토에서 그나마 믿을 거라곤 범국가적으로 치러지는 공인된 시험밖에 없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판국에 대학별 출제니, 면접, 논술 등이 과연 똑같은 차원의 점수로 환원시킬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수능 위주의 테스트 방법을 '개혁'한 것이 더 큰 부작용을 낳았는데, 결국 돌아갈 곳은 수능밖에 없다면 모두들 반대하겠지만 그래도 그 방법이 가장 한국적인데, 이럴 경우 시험제도 자체를 개혁해야할 것이다. 고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을 적어도 3회 이상 국가고사로 치르게 하여 그걸 테스트의 기본으로 삼는 게 가장 신뢰성 있는 제도이며, 고교 교실의 정상화도 살리는 길일 것이다. 각 대학이나 학과(학부)에서는 고교의 전과목 중 필요로 하는 과목만을 임의로 선택하여 그 점수만으로 선발하면 될 것이다. 테스트는 신뢰성 있는 국가시험으로 하고 대학은 자율적으로 그걸 채택하는 절충식으로 이는 고교 교육 정상화와 입시제도의 혼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사교육은 여전할 것이나 그걸 당국이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떤 제도가 되든 사교육은 있을 것인데 마치 이를 죄악시하는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일생에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에 가장 좋은 그 시절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될 것이다. 근본문제는 사회체제를 평등의식으로 바꾸는 것이지 결코 입시제도의 변경만으로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교육비의 엄청난 수치 앞에서 아무리 전율해 봤자 자식의 미래에 투자하는 걸 막을 재간은 없을 터인즉 국가는 그 사교육조차도 정말로 필요한 교과목이 되도록 커리큘럼과 입시문제를 조정하면 될 것이다. 사교육비를 문제삼는 것은 외제 화장품이나 고급 의류를 금지시키겠다는 억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입시제도의 다원화와 사교육의 과열을 거론하지만 자율화가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며 당분간 그렇게 될 기미도 없기에 제도적으로 불공정과 부정부패의 요인을 막아야 할 것이다. 원리와 원칙으로 돌아가면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정치적으로 꼬이게 하여 교육과 국민의 지적 풍토 진작을 가로막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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