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거족 안동권씨 권태사의 후예 14개파 중의 하나인 '복야파'의 한갈래가 세거해 온 안동시 풍천면 가일(佳日)마을.
학가산 줄기가 서남으로 뻗다가 풍산평야 모서리에서 두 봉우리를 만들어 마을 뒷쪽으로 암벽이 병풍처럼 둘렀고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동서로 흐르는 천혜의 명당마을이다.일찌기 이 마을에는 고려때 왕씨에 이어 류씨가 살다가 조선초기에 들어 안동권씨들이 입향해 집단부락을 이룬 곳이다.
조선 세종때 정랑(正郞)을 지낸 권항(權恒.1403~1461)선생이 입향조다. 그는 이마을 부호였던 장인 류서로 부터 부근의 임야와 많은 전답을 물려 받으면서 이곳으로옮겨 살았다.권항은 1441년에 문과에 급제해 감찰로 명나라를 다녀와 거창현감과 호조정랑, 성균관 사예 등을 역임하고 세조 2년에는 영천군수로 부임해 그곳에서 59세로 별세했다.
이 후 500년간 이마을에는 수많은 선비들이 배출돼 영달과 공명을 탐하지 않고 도덕과 학문을 실천했으며 구한말에는 권오설 등 구국운동에 이바지한 지사 여럿이 광복대업에 참여 했다.이 마을은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풍요한 영향으로 풍속이나 인정 또한 부드러워 추수때 지주들은 소작농들이 부족한 곡물을 내거나 아예 못낼때도 따지거나 독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구에는 넓은 저수지를 만들어 언제나 푸른 물이 넘실대고 뒷 산과 어우러져 배산임수 전형의 마을자리를 이루고 있으며 양쪽으로 울창한 송림을 조성해 바람이 들고 나는 것을 막고 있다.이 저수지에는 가일마을의 거부 조수만의 전설이 오랫동안 교훈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수만은 엄청난 재산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역으로 정권을 잡아 보겠다고 문경새재에서 모의를 이르켰다가 아들 삼형제와 참수 당했다. 이때 조정은 조수만의 집터와선대의 묘터에 넘치는 양기가 화를 부른것으로 판단하고 집터를 허물어 저수지를 만들었다 한다.마을에는 화산(花山) 권주(權柱)선생의 종택인 안동시습재(安東時習齋)가 문화재자료 370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종택보물로 권주종가문서(보물 549호)와 권주종가문적(보물 1002호)이 보관돼 있다.
또 중요민속자료 176호인 가일 수곡종택은 ㄷ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 그리고 그 옆 ㅡ자형 별당채와 대문간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가로 전해온다. 별당의 일지재(一枝齋)는 자손들로 하여금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특별히 권조선생이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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