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시험 치는 날은 갑자기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매년 되풀이되는 불가사의의 하나다. 아마 하늘도 우리 사회의 대학입시 제도가 무척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그만큼 하늘의 징후가 있었으면 이제 깨달을 때도 되었으련만, 인간의 아둔함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올해 수능은 난이도 조정에 실패해서 또 한번 난리다. 앞으로 수능을 단순한 자격시험의 형태로 바꾸어 가겠다면서 변별력을 높여야겠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러니 하늘도 무심하실 수가 없었던 게다.
수능의 변별력을 높이든 낮추든, 자격시험이 되었건 말았건, 아예 수능을 없애든 말든, 대학별 시험을 치든 말든, 사실 달라질 건 별로 없다. 수능이 쉬워진다고 과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논술과외, 면접과외가 이를 웅변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심지어 인성과외, 적성과외가 등장하는 판이다. 수능이 어려워지면 수능과외가 판을 칠 것이고, 대학별 시험이 부활되면 이를 두고 또 난리를 떨 것이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정책실험은 이제 그만 두자. 대학입시 문제는 그 주체들에게 모든 것을 그냥 맡겨 버려라. 대학마다 자기 책임 하에 자체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율권을 주라. 입시경쟁에 목숨을 걸겠다는 사람들이야 어찌 하겠는가.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라. 차라리 그게 낫다. 현재로선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괜히 이런저런 실험으로 괴롭히지나 말아주었으면 고맙겠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모든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진학을 전제로 하는 한 입시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마당에 입시제도에 왕도란 있을 수 없다. 교육 정상화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대학 진학 이외의 다른 영역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 입시경쟁과 무관하게 자아 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최근에 발표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동일계 대학 특례입학 제도는 그야말로 기가 차는 엉뚱한 짓이다. 실업계 고등학교까지 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 학교로 만들겠다는 이런 정책이 바로 우리 교육을,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다. 이러고서도 오로지 대학입시 제도만을 통해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대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다. 직업교육의 공교육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파격적 예산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업계 중학교의 신설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대학 특례 입학이 아니라 특례 취업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들이 취득한 기술 자격증이 없이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개업할 수 없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의사 자격증 없이는 병원을 개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를 위해서도 직업교육의 기회를 확대 공급해야 한다. 대학 나온 화이트 칼라들이 아니라 이들 직업교육 이수자들이 우리 사회 중산층의 주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두 가지 제도적 보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사회 분위기가 일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왜곡된 학문 숭상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도 '학문적 지식에 대한 과신'을 경계한 바 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지식 중 학문적 지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문 기능인들의 몸 속에 녹아 있는 비학문적 지식이 학자들의 학문적 지식 못지 않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요, 그런 사회에서는 적어도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영남대 교수.경제학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