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어르신발언대 쏟아진 의견들

입력 2001-11-03 15:50:00

노인들은 자녀들로부터,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받기만해야 하나. 노인들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뭔가를 해줄 수 있을까. 해줄 수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지난 달 31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바우어관에서 열린 '대구어르신발언대'행사. '어르신과 자원봉사'라는 주제를 놓고 10명의 노인들이 연단에 선 이 날 행사는 노인들이 어떤 형태로 '아름다운 실버'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계명대학교와 가정복지회가 공동주최하고 신당종합사회복지관과 달서구노인문화대학이 주관한 이 날 대회에서 노인들이 그려낸 '아름다운 황혼'을 들어봤다.

◇이렇게 삽니다

정재헌(66)할아버지는 노인학교와 복지관의 자원봉사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정씨는 교단경력에다 교단생활 도중 틈틈이 시간을 냈던 어머니교실 강사경력까지 합쳐져 노인학교의 인기강사로 자리를 잡았다.

정년단축으로 교단을 떠나면서 말할 수 없는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는 정씨는 이젠 사는 맛이 난다. 젊어서부터 일과후에 대구 동성 주부학교 검정고시반 교사로 무료봉사했던 정씨. 젊은시절부터 자원봉사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남을 위해 하는 일'이 결코 힘들지만은 않다.

정씨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는 성경구절이 있어요. 늙은이도 조그만 봉사는 다 할 수 있어요. 마지막을 보람되게 장식해야죠"라고 말했다.

박경자(64)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정말 바쁜 노인'으로 통한다. 4년전부터 영남대학교 의료원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씨. 분주한 병원 자원봉사이니만큼 박씨도 늘 바쁘다.

박씨가 하는 일은 대단히 많다. 1주일에 한번씩 암환자들에게 빛을 차단하는 링거줄감기, 차트만들기, 신생아실 아기에게 필요한 부목만들기, 안대만들기 등등. 노인이 감당하기에 다소 벅차기도 하지만 박씨에게 후회란 없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무겁고 팔을 위로 올릴 수가 없어 왠지 불안한 마음도 든다는 박씨. 그러나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4년간의 자원봉사자 노릇을 하면서 몇가지 좌우명도 만들었다. 늙어서 무슨 좌우명이냐고. 하지만 60평생의 삶에다 뒤늦은 자원봉사경험이 합쳐져 꽤나 괜찮은 좌우명이 탄생했다. 환영받는 봉사자, 생각하는 봉사자, 실천하는 봉사자가 바로 그것. 박씨는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마냥 행복하다고 했다.

이석호(78)할아버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한달에 열흘 가량씩 거기로 나선다. 교통정리를 위해서다. 지난 99년부터 시작된 교통정리 자원봉사. 이젠 안나가면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다.

교통 사고가 많이 줄었다는 주민들의 칭찬은 항상 힘을 얻게 한다. 내친 김에 요즘은 이웃 노인들과 함께 거리청소도 한다. 할일이 많다는 것은 즐겁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이웃의 따뜻한 말한마디는 귀까지 즐겁게 한다.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어요

김상락(67)할아버지는 월드컵을 맞아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기장 주변 청소봉사, 어린이 보호 및 안내 등을 노인들에게 맡겨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노인들에게 일정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줘야한다고 부탁했다.

하장수(68)할아버지는 청소년선도에 노인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비뚤어지는 청소년들이 많은 만큼 이 참에 노인들이 아이들을 바로잡는데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곤(70)할아버지는 이웃의 정을 되살리는 캠페인에 노인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자신이 아버지회를 조직, 이웃들을 불러모으자 이웃들간의 정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

김씨는 이웃간의 닫힌 문화를 나타내는 단적인 예가 승강기라며 승강기속의 닫힌 문화를 열린 문화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나서 동네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해보니 실제 효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김씨는 노인들이 힘이 없을 것 같지만 한번 나서면 바꾸기 어려운 이웃의 문화마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수(69)할아버지는 노인들이 동네 외곽청소를 맡아보니 거리도 깨끗해지고 일정 부분 수익도 발생, 사회를 위한 기금조성도 가능하다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노인들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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