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지역적 다양성과 해학이 넘치는 논매기소리
우리 민요 가운데 논매기 소리처럼 다양한 노래가 없다. 세 차례 논매기를 할 때마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 데다가, 지역에 따라 제각기 다른 노래를 부르기때문이다. 특히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앞소리꾼의 창조적 재량이 마음껏 발휘되는 까닭이다. 소리꾼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소리 목록을 가지고있어야 한다. 아무리 목청 좋은 소리꾼이라도 같은 소리를 거듭 메기면 신명이 날 리가 없다. 따라서 소리꾼들은 이 소리 저 소리를 자유롭게 끌어들여 앞소리를 메기는 까닭에 소리문화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지나치게 속 좁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두 극단만 존재한다. 극단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멱살잡이를 하며 상극을이룬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정권교체도 이루어진 덕분에 다양성이 제법 살아나다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편가르기식 양극화 현상이 새삼 심화되고 있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역동성도 없고 창조성도 없는 죽은 사회이다. 논매기 소리를 보면, 전혀 딴 소리를 해도 논매기를 돕는 같은 기능의 논매기 소리임에 틀림없다. 이것만 논매기 소리라는 극단적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 때는 오뉴월 삼복시라
태양은 불볕 같고
모는 점점 자랐겠다
우리가 이 농사를 잘 지어서
첫째는 나라 봉양
둘째는 부모 봉양
알뜰살뜰 살아보세
신안군의 장기열 어른 소리이다. 불볕 더위 속에 논매기를 하면서도 모가 푸르게 자라는 것이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농사의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그 희망이란 나라를 잘 살게 하고 부모를 섬기는 일이다. 결코 자신의 배불리는 일을 앞세우지 않는다. 알뜰살뜰 살아서 나라와 부모를 섬기고자 일하는 사람에게결코 적이 없다. 누구가 죽어야 내가 살거나 누구가 망해야 내가 성공한다는 상극적 논리 같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수갑산 잔솔가지~/ 꺼진불도 살린다네~
각씨각씨 고운 각씨~/ 죽은 임도 살린다네~
저기 가는 저 선비야~/ 갓끈조차 호걸일세~
우리 성님 살었으면~/ 우리 성부 삼을 것을~
영동군의 서병호 어른 소리이다. 갑산의 잔솔가지는 꺼진 불을 살리고 고운 각시는 죽은 임도 살린다. 잘 생긴 선비를 보니 죽은 성님 생각도 절로 난다.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세태에 한결같이 살리는 소리가 낯설게 들린다. 잘 생긴 여자나 남자를 보면 동기간에도 시샘을 내서 다투고 친구끼리도 연적이되어 서로 차지하고자 싸우는 드라마가 판을 치는 세태에, 죽은 성님을 떠올리는 상생적 발상이 사무치도록 아름답다.불러 보세 불러 보세
이십 전에 배운 노래
사오십이 근근허니
노래정도 간 곳이 없고
마느라 정도 간 곳이 없네
전라도라 허는 디는
곡창의 지대요
우리 농군들은 날이 날마다
농사에 전력허여
국가 부흥을 힘을 쓰네
함평군 천학실 할아버지 소리이다. 노인의 정서와 지역정서가 함께 버무려져 있다. 이십 전에 배운 노래가 사오 십이 되니 노래 부를 정황도 없고 마누라사랑도 힘에 부친다는 말이다. 전라도는 우리나라 곡창지대라는 경제적 인식과 책임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따라서 농사일을 열심히 하여 국가를 부흥시키려는의지와 농군으로서 보람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하날 위에 베틀 놓고/ 구름 위에 이애 걸고
베틀다리 네 다리/ 마구 합쳐 육다리를
옥난간에 벌려 놓고/ 베틀놓세 베틀놓세
안동 조차기 할아버지는 논매기 소리로 베틀노래를 불렀다. 안동포로 유명한 길쌈 고장답게 베틀노래가 논매기 소리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어서 성주풀이도 논매기 소리로 불렀다. 경상도라 안동땅에이/ 제비원이 원일러레이
제비원에 솔씨받어/ 이등저등 뿌렸더내이
그에 솔이 장성허요이/ 황경목이 되었더래이
기능을 따지지 않고 사설만 보면 앞의 노래가 베틀노래이듯이 이 노래도 성주풀이가 분명하다. 안동은 성주신앙의 본향인 만큼 성주풀이가 논매기소리 구실을 감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지역성이다. 이처럼 논매기 소리에는 아무 소리나 자유롭게 끌어올 수 있다. 쾌지나 칭칭은 물론, 오독떼기에다가방아타령, 초한가, 회심곡, 진주낭군, 나물노래, 심지어 덜구소리와 상여소리까지 등장한다. 지역적 특수성을 두고 누가 이를 지독한 지역감정이라 하겠는가. 논매기 소리의 다양성이다. 노래문화는 이러한 특수성과 다양성을 통해 발전한다. 니 귀 빤듯허야
그귀 빤딱 장판방에
깨벗은 큰애기 나자빠졌구나
돛대돛대 부러진 돛대
전나무 돛대 할아비 돛대로구나
신안군 김순례 할머니 노래이다. 돛대 소리는 신안 앞바다의 어촌 정서에서 온 것이다. '게 잡으러 가자'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돛대가 모두 부러진돛대로 노래된다. 전나무로 돛대를 두고 한결같이 부러진 돛대이자 할아버지 돛대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고개 숙인 성을 부러진 돛대에 빗대어 노래하는가 보다. '네 귀 반듯한 장판방에/ 깨벗은 큰애기 나자빠졌구나' 하는 대목에도 해학이 넘친다. 발가벗은 것을 '깨벗다'고 한다.열 아홉 살 묵은 과부가
스물 아홉 살 묵은 딸을 잃고
금강산 모랭이 딸 찾아
나는 듯이 갔다가이
울청 덤에 미끄러져
나자빠라졌다 어이 ~
어데로 찔리ㅆ노 하마
그게 그게로 찔리뿐기라
밀양 사는 민학덕 할아버지 소리다. 이제 딸 찾는 소리가 논매기 소리일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열 아홉 살 과부가 스물 아홉 살 먹은딸을 찾아간다는 희극적 불일치가 웃음을 자아낸다. 게다가 나는 듯이 산길을 가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는데 하필 거기가 돌뿌리에 찔렸다고 한다. 민씨 할아버지는이 대목을 부르고 나서 '거기라고 하면 어딘 줄 다 안 아나?'하고 반문을 해서 좌중을 다시 웃겼다. 넘어져도 여유가 있고 일을 해도 해학이 넘친다. 언론 세무조사도 이처럼 여유 있게 풀어나가야 한다. 한갓 탈세 문제라면 세무조사든 법 적용이든 평소처럼 순조롭게 할 일이다. 2년 전의 중앙일보 사주 구속이좋은 보기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중앙일보를 죽인 것도 개혁한 것도 아니다. 다만 탈세에 따른 사법처리였을 따름이다. 그때는 여론의 양극화도 심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세무조사를 두고 언론개혁이나 언론탄압으로 양극화 논리를 조성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양극화 논리를 펴는 사람은 누구든 정치적속셈에 매몰된 사람이다. 불량식품 사주를 탈세혐의로 구속한다고 해서 불량식품이 우량식품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탈세혐의 없는 회사라 하여 우량식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군부정권 시절 '땡전뉴스'로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방송도 이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탈세와 상관없이공정보도와 언론자유를 중심으로 언론개혁 운동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사주로부터 자유 못지 않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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