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로운 개(義狗)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동물의 지혜'를 쓴 로마네르는 개는 그 문화권이나 그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닮는다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의리를 존중하는 문화 탓이었는지 '의리 있는' 개들이 별나게 많았다. 전승하는 설화로 주인이 술에 취해 쓰러진 후 들불이 일어나자 여러차례 몸에 물을 적신 개가 불길을 막아 주인을 구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 김개인을 구한 '오수개' 얘기가 전북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마을에 전해오며 조선시대 성원이라는 선비를 구한 삽살개를 기린 의구비(義狗碑)가 경북 선산군 도개면 신림리에 있다.
▲이밖에 고려말 정3품 벼슬까지 하사받은 황구이야기도 있다. 이 개는 개성 진고개에서 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눈먼 고아를 돌봤다. 황구는 그 아이에게 꼬리를 잡혀 이웃집에 밥을 빌어먹이고 그 다음엔 샘으로 데려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또 평양 선교리 대동강변의 한 언덕에 있는 의구총은 겁탈당하고 죽음을 당한 주인 수절과부의 범인을 관가에서 잡도록 한 개의 무덤이라고 한다. 최근 사례를 보면 지난 94년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간 지 7개월만에 굶주림과 싸우며 피골이 상접한 채 300여㎞를 걸어 옛 주인에게 돌아간 5년생 진돗개 '백구'의 이야기가 있다.
▲기습 폭우가 쏟아진 지난 15일 새벽 두살배기 수캉아지인 발바리 '벤'이 목 끈을 풀고 곤히 잠든 주인 박모씨(70·서울 관악구 신림10동) 부부를 깨워 목숨을 구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박씨부부는 '벤'이 배위에 올라와 짖는 바람에 잠을 깨 급히 대피, 급류에 휩쓸린 승용차 2대가 집을 덮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이 개는 주인은 살렸지만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폭우속에서 주인을 구한 사례는 지난 98년 여름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 오임실씨 집에서도 있었다. 집중호우로 집이 수몰되기 직전, 키우던 개인 '해피'가 맹렬히 짖어 잠에서 깨어난 오씨가 아들과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는 것.
▲의구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의리'에 목말라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IMF이후 오직 '돈'만으로 모든 것이 재단되는 황금만능주의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는 우리사회에 '인간이 아닌' 동물이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나 할까. 개 뿐만 아니다. 지난 7월 경북 상주시가 자신을 정성스레 돌봐준 할머니의 묘소에 혼자 찾아가 눈물을 흘린 열세살짜리 한우 암소에 대해 의우총(義牛塚)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참으로 희귀한 의우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정치권 등 이 사회 지도층은 물론 염량세태의 이 병든 사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신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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