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1-05-07 15:23:00

장카밥카로 허기를 때우던 시절, 환한 날 없이 가업은 기울어도

결코 벼랑이 아니었다

식은 밥덩이로

산짐승같은 허기를 달래

슬픔을 벼려 힘을 키웠다

못난 인간이 세월을 무정하게 만든다

비틀어 매듭지어 옹이를 박는다

농사짓다 빚잔치하고 내소박당한

마흔 근처 아들 하나

궁상궁상 속 끓이다 자진한 뒤

마당가 소의 눈빛을

확! 뒤집어

제 눈에 광기를 담고 싶지만

격렬한 분노는

꺽정이처럼 쓰러진다

늙은 혁명가의 눈에

불, 꺼진다

-이중기 '저 농부에게 바치다'

중국산 마늘 수입 때문에 자신의 마늘밭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부를 보았다. 그가 흘린 눈물을 보았다. 비단 마늘뿐이겠는가? 농촌은 수입 농산물 때문에, 아니 잘못된 농정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

모두가 이농하고 현재 국민의 8% 정도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도 옛말이 되었다. 농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전체가 '자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두렵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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