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왕회장의 별세

입력 2001-03-22 14:56:00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했던가. 한국 경제계의 거목이자 한국 갑부의 상징으로 통해왔던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이 어제 밤 이승에서 이룬 모든 것을 두고 저승으로 떠났다.

그가 두고간 재산은 한 때"내 재산은 나도 모른다"고 할 만큼 엄청났지만 이제 남은 것은 자택 두채와 퇴직금이 전부다. 그리고 유족으로는 병석의 아내와 아들 일곱형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고 86년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와 같이 빈손으로 저승길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빈손으로 떠났지만 이승에 살다간 영욕의 세월 동안 이 나라에 남긴 유무형의 유산은 너무나 크다.

그것은 그의 가족이 물려받은 재산에 비할 바 아니다. 건국후 6.25전쟁까지 겪으면서 가난과 후진의 절망속에 '하면된다'는 신념으로 개발연대의 공업입국을 이끈 핵심주역으로서의 빛나는 그의 업적은 국민적 칭송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오늘의 한국이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데 기여한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우리 현실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선진국의 상징적 상품이던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세계적 조선국가로 격상시킨 것은 우리국민의 우수한 잠재력을 확신시켜준 물질적 성취보다 위대한 업적이었다.

마침내 이 나라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세계에 설득시켰고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그의 열정은 민족과 세계인의 감격이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그에게도 노령의 한계와 더불어 여러차례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낸 것은 안타까웠다. 특히 가족경영이 빚은 현대그룹의 불협화음과 이에 겹친 무리한 대북사업등으로 현대가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은 이미 그의 시대가 가고있었음을 실감케했다. 그러나 '왕회장'혹은 '경제대통령'으로도 불리던 그도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현대의 남은 문제들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명복을 빈다.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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