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창가에서(윤주태 출판부장)

입력 2001-03-17 14:43:00

혼돈, 혼란, 카오스,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화두다. 무엇이 혼재(混在)해 있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안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뒤집어보면 발전의 역동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체에 병균이 침입하면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백혈구의 활동이 왕성하듯 사회는 아무리 불안해도 그 '반작용' 세력이 건재하면 혼란속에서 오히려 진화를 거듭한다.

이렇게 방향이 서로 다른 두 힘이 맞서있을 때 사회는 건강하고 비로소 그 무게가 시민들에게 실리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가볍다. 도저히 힘의 균형을 느낄 수없을 만큼 한쪽으로만 실리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은 서구 자본주의의 위대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12년 사우스햄튼 항구를 막 출항하려는 타이타닉 호의 산더미 같은 위용은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마치 "자본주의여, 영원하라" 를 외치며 거칠 것 없이 항진해가는 서구 자본주의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정신에 대해서 고뇌하고 있었다. 마침내 근대자본주의 정신은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를 계승하였음을 밝혀냈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은 직접노동으로 인하여 육체적 쾌락을 희생하는 금욕적·윤리적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즉 자본주의의 풍요는 자기희생의 토대위에서 꽃필 수 있다는 것을 갈파한 것이다.

비록 타이타닉은 침몰했지만 자본주의는 침몰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도 바로 "풍요로울수록 근검해야 한다"는 베버의 가르침에 따른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가볍다. 한쪽으로 힘이 실리면 다른 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 우직한 힘의 쏠림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힘은 균형을 잃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디지털 붐이 일자 아날로그는 완전히 폐기물 취급당했다. 정보통신 산업이 경제를 살린다고 떠드는 바람에 굴뚝산업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없는 디지털만의 발전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곧 증명됐다. 미국 나스닥 시장의 붕괴는 첨단산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그나마 주식시장을 받치고 있는 힘은 아직도 굴뚝산업임이 드러났다. 뒤늦게 굴뚝산업으로의 회귀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피폐한 굴뚝산업을 어떻게 다시 추스를지 의문이다.

최근에는 개방화, 세계화 바람을 타고 '우리의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영어공부에 목숨을 건 사람이 많아졌다. 당연히 학교교육은 무너지고 학원교육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같은 힘을 견제해 줄 상대 세력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제는 의식조차도 혼란해져 부(富)를 축적하는 것만이 자본주의의 본질인 줄 착각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돈과 권력에 혈안이 된 무슨 광란의 도가니 같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것을 잃고 있다. 신뢰는 떨어지고 믿음은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됐다. 우리 스스로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베버는 천민자본주의를 "저급한 윤리의식 하에서 주로 투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자본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이미 100년전에 그는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로 흐르는 것을 크게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어떤가. 아예 천민자본주의를 넘어 정치에서, 교육에서, 문화에서 전반적으로 천민화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이리 가벼운가, 그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내일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오늘 우리가 그려놓은 자화상을 하루 아침에 쓰레기통에 던져버릴지 우리 사회의 '가벼움'에 그저 두렵기만 하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