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詩)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외국에서는 시집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수백만 부나 팔리는 시집도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그런 현상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시가 이 같이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한(恨)으로 대변되는 민족 정서와 깊은 함수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 특유의 한을 표현하는 데는 시가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등장했다.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시를 통해 일제에 저항하면서 민족의식을 노래하는가 하면, 모국어를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차치하더라도 모국어를 아름답게 갈고 닦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김소월과 함께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빼어난 토속어에다 멋들어진 선율까지 구사한 정지용은 지난 90년대부터 '향수'가 시와 노래로 겹사랑을 받는 등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1988년 해금 조치 전까지는 이름조차 거론할 수 없는 시인이었다.
6·25 때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40년 가까이 배척됐지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그의 자녀들이 만나게 되면서도 납북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26일 그의 세 자녀인 남의 구관(72·경기 의정부)·구원(66·서울)씨와 북의 구인(67)씨의 상봉은 시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한으로 아로새겨졌다. 난리통에 아버지를 찾는다며 집을 나간 구인씨와 남의 남매가 극적으로 만났다.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이들은 얼싸안고 흐느꼈지만 남과 북에서 함께 높이 평가되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는 그 마음이 가라앉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에 대한 평가는 '하나'였으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둘'이었다.
북의 동생은 남한에서 미군 비행기의 총탄을 맞았다고 북의 기존 주장을 믿고 있는 반면 남의 형은 우익활동 혐의로 50년 7월 북한군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평양교도소로 이감된 뒤 폭격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의문에 대한 진실이 어느 쪽이든 여전히 남북간에 남아 있는 앙금처럼 안타깝고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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